터키행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정신이 없는데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생소한, 이상한 번호였다.

국제전화이거나 공중전화라고 생각했다.



근데 허거걱... 일본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마지막 만난 것이 10년도 넘은 마사끼였다.

여전히 영어 서툴고, 나도 서툴러서... 통화는 참 답답했다.ㅋㅋㅋ



마사끼 직업이 바텐더였는데, 지금 여행작가가 되었단다.

나랑 직업이 같아졌다고 자랑(?)이다.^^



마사끼 이야기는 <여행자의 편지>에도 실렸다.

아래는 과감하게 원고 전문이다.^^

다음 주에 다시 전화한단다.

내 번호가 011에서 010으로 바뀌기는 했어도 착신(?) 서비스가 되어 있는 덕분에 전화 연결이 되었다.

이전 011번호는 휴대폰 쓰면서 초기에 한 번 바뀌고는 평생 쓰는 번호다.



나도 가끔 어찌 사는지 궁금했는데, 지도 나를 안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 엉뚱하면서도 착했던 친구였다.

사진에서 좌측 앉아서 엄지 내밀고 있는 친구가 마사끼다.

원고에 보면 알 수 있지만, 우리는 그를 '나서기'라고 불렀다.

뭐든지 나서는 스타일.^^*



여전히 삿포로 어딘가에 산단다.

마사끼 만나러 일본을 가야할 것 같은 느낌.^^

서울 여행 오고 싶은데 지금 돈이 없단다.ㅋㅋㅋ



PS : 저녁 비행기로 터키 다녀옵니다.

7월 12일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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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청춘들

하루 종일 호이안을 산책했다. 며칠을 머물면서 이미 스쳐지나간 곳들이었지만 오늘은 좀더 멀리까지 다녀왔다. 걷다가 지치면 허름한 찻집에서 연유가 듬뿍 들어간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지친 걸음을 달랬고 배가 고프면 노점에서 질긴 바게트를 사먹었다. 그렇게 하루를 헤매다 돌아와서 내가 선 곳은 시장이었다. 파란색 무늬로 장식된 그릇들과 흙이 그대로 묻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야채들.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백김치를 닮은 반찬과 생새우를 각각 500g씩 샀다.



대책도 없이 장을 보기는 했지만 비닐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어떻게 요리를 해먹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김치야 그렇다고 치고 새우가 문제였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했을 때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일본인 친구들이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히로’와 ‘마사끼’는 숙소 주인에게 프라이팬을 빌렸고 나는 숙소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신문이라는 신문은 모두 모았다. 그리고 우리는 어두워진 강가로 나갔다. 운이 좋게도 낮에 누군가 작업을 하고 치우지 않은 톱밥을 발견했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신문지에 톱밥을 담아 불을 지폈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을 피하다 보니 가로등 조명까지도 닿지 않는 곳이었다.



톱밥은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우리는 머리에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연신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새 프라이팬에서는 자글자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받침대로 쓸 만한 돌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돌아가며 프라이팬을 들고 있어야 했으며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신문지로 손을 감싸야 했다. 어두워서 새우가 어느 정도 익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뒤늦게 마사끼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손전등이 있음을 발견했다. 멀쩡한 손전등을 두고도 우리들을 고생시킨 마사끼가 모두의 야유를 받으며 불을 밝혔을 때 우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날린 재가 프라이팬을 덮어서 새우가 온통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손전등으로 서로의 얼굴을 비춰보고는 모두 자지러지고 말았다. 방금 굴뚝 청소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처럼 얼굴에 검은 칠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작전을 위해 얼굴을 위장한 군인과도 같았다.



프라이팬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우리는 낄낄낄 웃어가면서 새우를 까먹었다. 그리고 누군가 맥주를 사기 위해 가게로 달려갔지만 구멍가게에는 찬 맥주가 없었다. 잠시의 논의 끝에 우리는 남은 새우를 들고 베트남 생맥주인 ‘비아호이’를 마시기 위해 마을의 반대편 끝까지 걸어갔다. 그곳에 우리가 몇 번 들렀던 생맥주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잔씩의 생맥주를 마셔도 충분할 정도로 새우의 양은 제법 많았다.



히로와 마사끼를 처음 만난 곳은 하노이였다. 일정과 코스가 비슷해 서로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이후 가는 도시마다 다시 만났다. 내가 호이안에 도착한 날도 숙소를 구하기 위해 몇몇 숙박업소를 돌아보고 있을 때 ‘헤이! 박상’하고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호이안에 며칠 먼저 도착한 히로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히로를 따라 그가 머무는 숙소에 묵기로 했고 그곳에는 마사끼도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다음 날은 모두 그곳으로 몰려가서 저녁을 먹었고 해가 지면 온통 중국풍 전등으로 장식된 카페에서 맥주나 차를 마시기도 했다. 언젠가는 몇몇 여행자들과 합세해서 자전거를 타고 20분 쯤 떨이진 바닷가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때 나와 한국인 여행자 몇은 마사끼의 별명을 ‘나서기’라고 붙여주었다. 낙천적이면서도 말도 많고 뭐든 앞장서서 일을 만들기 좋아하는 마사끼에서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지만 마사끼가 그 뜻을 물었을 때는 ‘리더십이 강한 사람’ 정도로만 설명해 주었다. 일본인보다 한국인을 더 좋아했던 마사끼는 정서도 한국인과 흡사했고 이후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늘 자신을 나서기라고 소개하며 다녔다.



나서기와의 인연은 꽤 질겼다. 베트남 여행을 마칠 때까지 모든 도시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도 한국에 들러서 먼저 귀국한 나를 찾았다. 그때 나서기는 호이안의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내게 주었다. 찍어줄 사람이 없어 배낭에 올려놓고 셀프타이머로 찍었던 단체 사진이었다. 사진은 우리들의 청춘처럼 삐딱했다. 나는 내가 받은 그 어떤 사진보다 삐딱한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반듯한 사진이 널려있는 세상에서 삐딱한 사진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만난 우리들은 강남까지 진출하며 술을 마셨고 그날 나는 고장 난 술집 강화유리문과 함께 넘어지면서 손가락 두 개를 크게 다쳤다. 술집 주인은 술 취한 우리들이 발로 문을 걷어찼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고장 난 유리문이 힘없이 넘어졌다는 우리의 항변은 술이 취했다는 이유 때문에 유리하게 인정될 수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소송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고였다. 그 상황에서 나서기는 일본으로의 귀국을 연기하면서까지 나의 증인으로 남겠다고 했다. 일행의 증언이 어느 정도 인정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목격자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 그의 증언만이라도 확보해 두어야 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합의가 늦어졌다. 그래도 합의 과정에서 증인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나서기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떠나기 전 만약을 대비해서 자신의 증언을 공증까지 받아준 친구였고 일본에서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증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며 친절한 다짐을 몇 번이고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때 불현듯 나서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1년 전 그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곧바로 다시 여행을 떠났고 무려 1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귀국하는 길에 또 한국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떠돌이 생활을 접고 자신의 직업이었던 바텐더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의 고향인 삿포로로 다시 돌아갔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나서기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미안하다는 사과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더욱 안타까워했다. 식사 후 계산기를 동원해서 10원까지도 분배하는 다른 일본인과 달리 나서기는 종종 한턱 쏘기를 좋아했다. 물론 나서기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그의 행동이 가끔은 돌발성이 강했지만 늘 주변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었다. 그런 나서기에 대해서 다른 일본인 친구들은 창피해 하는 분위기였다. 그가 없을 때, 원래 일본인은 저렇지 않다며 마사끼가 특별한 성격의 소유자이니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아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호이안의 바닷가에서 찍은 삐딱한 사진은 그 어떤 사진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내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증권회사에 다니다가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토씨’는 복직이 되었는지,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히로’는 지금쯤 결혼했는지, 아직도 해석되지 않는 메모를 내 일기장에 남겨준 ‘히데끼’는 지금도 음식에 대한 욕심이 많은지, 나서기는 삿포로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잘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놀러갔던 호이안의 바닷가는 여전히 안녕한지.



우리가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렇게 자주 만났던 것처럼 약속 없이 살다보면 세상의 어디에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도 우리는 시장에서 구입한 새우를 강가에 앉아 낡은 프라이팬에 구워 먹을 것이고 자전거를 몰고 몇 십 분을 달려서 바닷가에 놀러갈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일하는 것보다 여행을 더 좋아했던, 조금은 무책임했던 우리들의 청춘을 반성하며 또 다시 삐딱한 기념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닷가에 놀러갔던 그날처럼 해가 완전히 져버리는 것을 보고난 후에야 자전거를 몰고 천천히 마을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뚜껑 있는 프라이팬을 빌려서 까맣게 재가 덮인 새우가 아닌 붉고도 노랗게 익은 새우를 먹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잘 구워진 새우의 머리와 등껍질이 얼마나 맛있는지 깨달았으니 재가 덮인 새우는 내게 너무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날도 잘 익은 새우를 싸들고 생맥주집을 찾을지 모른다. 그때, 잘 구워진 새우처럼 삶은 여전히 버릴 것이 없다는 깨달음이 안주로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삐딱했던 우리들의 청춘까지도 말이다.

  

베트남 호이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