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서평

며칠 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물에 젖어 축축 늘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빗나가는 일기예보를 탓했다. 세상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마른장마’라는 단어가 일기예보에 등장하더니 역시 때가 되니 비는 어김없이 내렸다.

습기 가득한 겉봉투를 찢어내니 다행히도 뽀송뽀송한 책이 나왔다. 포장이 마치 방습제라도 되는 듯했다. 표지는 익숙했다. 인터넷 서점에 관심물품으로 등록해두었을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서점에서 이미 눈여겨보았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밀려 있는 책 다 읽으면 주문할 생각이었다.

몽골은 티베트와 함께 영원한 여행 후보지 0순위였다. 그러면서도 의외의 나라들이 불쑥불쑥 끼어들었고 몽골은 0순위 후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늘 다음 기회로 밀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티베트까지 두 차례 다녀왔으니 다음은 몽골로 떠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일.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가 아니던가. 일단 책으로 먼저 떠나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열었다.

몽골은 죽은 영웅이 지배하는 나라다(19p). 그곳에서는 누구든 징기스칸이란 단어를 상표로 사용할 수 있는 덕분에 맥주를 시켜도, 보드카를 시켜도, 숙소를 추천해달라고 해도 그들은 늘 ‘징기스칸’이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징기스칸은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바람처럼 초원을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지만 몽골은 한 때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였다. 아마도 대지를 호령하던 그 피는 몇 세기를 지나도 그들 깊숙한 세포 어딘가에서 침묵하며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 몽골제국의 발상지인 아우락 궁궐터는 ‘징기스’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열세 살 때 ‘칸’으로 등극한 장소임에도 달랑 비석 하나가 전부란다(138p). 울란바토로에서 예닐곱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그곳에서 겨우 비석 하나만을 감상해야 하다니. 저자의 말대로 평생 초원을 떠돌며 사는 유목 민족에게는 한 곳에 정착해 커다란 궁궐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몽골의 겨울이 8개월이나 이어진다는 것은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건조한 덕분에 영하 3, 40도에 이르는 기온도 견딜 만은 하다고 하나, 말똥과 장작으로 밤새도록 불을 지펴도 아침에 일어나면 게르 안의 생수통이 돌덩이처럼 꽁꽁 얼어버리고 만단다. 하지만 달리고 달려도 온통 하얗게 뒤덮인 초원의 백설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다. 엉뚱한 상상이긴 하지만 만약 폭설로 길이 끊겨서 몇 채의 게르만이 존재하는 평원 한가운데서 한 달이고 갇혀 있게 된다면 그것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닐까 싶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었던 겨울이 지나면 삭막한 몽골 땅에도 봄과 여름이 찾아온다. 6월에서 8월이 아마도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93p)일 것이다. 7월 우기가 지나면 일제히 피어나는 들풀과 들꽃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사람도 말들도 가장 평온하고 자유로울 때이다. 푸른 초원 위에 길게 그어진 자동차 바퀴 자국과 그 앞을 힘차게 달리는 어미와 새끼, 두 마리의 말. 사진(142p)을 보면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휙휙 바람에 날리는 말갈기 소리가 자꾸만 환청처럼 들렸다. ‘카메라로 쓰는 책’이란 기획에 걸맞게 책은 사진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게르 앞에 서서 촬영한 가족사진이 그랬고 웃통을 벗은 채 마유주를 마시는 중년 남성의 시선이 그랬다. 많은 것이 변했고 폐광된 광산에서 목숨을 걸고 맨손으로 땅을 파들어가는 ‘닌자 광부’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곳은 영원한 여행 후보지 0순위다.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와 독립국 몽골로 분리된 몽골은 어쩌면 티베트와 혹은 우리와 흡사한 면이 있다. 독립은 했지만 온전하지 못한 것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국가의 일부가 중국에 남아 있는 것은 티베트와 흡사하다. 물론 우리는 통일이 되지 못했을 뿐, 남북이 모두 독립된 국가이고, 티베트는 전혀 독립되지 못한 채 국가 전체가 중국의 자치구로 남아 있지만 말이다. 하긴 그들은 우리 민족과 매우 밀접한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언어 또한 뿌리가 같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에게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는 아름다운 별명까지 지어주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런 연유들 때문인지 모른다.  

책은 내게 너무도 유용했다. 땅에 박았던 게르를 걷고 언제든 길을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삶은,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몇 번이고 되새김해야 할 깨달음이며, 어딘가 함정이 숨어 있는 수수께끼처럼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이틀로 예보되었던 장맛비가 일주일 동안 이어지던 어느 날 새벽, 말발굽 소리를 닮은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불도 끄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고 시계를 확인하기 전까지, 초저녁인지 아침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머리맡 휴대폰을 확인하고서야 지금이 새벽 3시며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잠시 누웠다가 그대로 잠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빗소리보다 정신이 더 말똥말똥했고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아 3분의 1이 남은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날 새벽 날이 밝을 때까지 책은 내게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대, 아직도 길을 떠나지 않았느냐고.

박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