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2006서울국제마라톤 겸 77회 동아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국내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중에 조선일보 춘천마라톤과 함께 가장 큰 메이저 대회로 알려져 있다. 특히 3월에 열리는 관계로 이 대회에서 나름대로의 목표를 갖고 있는 선수들은 동계훈련을 철저히 할 수밖에 없으며 나도 12월부터 이 대회를 위해 훈련을 했었다. 본격적인 훈련은 1월부터 했다고 봐야 하니 두 달 반 정도의 훈련 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대회 당일 5시 20분에 기상해서 전날 사두었던 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와 전철을 두고 고민하다가 한번에 갈 수 있는 버스를 선택했는데 이 놈의 버스가 배차 간격을 맞춘다고 너무 느리게 달려서 예상보다 늦은 7시 10분 경 광화문에 도착했다.

D그룹 지점으로 가서 영준이를 만났고 나는 복장을 안에 입은 상태였기에 갈아입을 일 없이 겉옷만 벗으면 되었다. 계속 봄 날씨를 유지하다가 대회 당일 아침에 급격하게 영하 5도로 떨어지는 바람에 온 몸이 꽁꽁 얼 정도로 추위는 대단했다. 그래도 버릴 점퍼를 가져가서 런 복장 위에 입었고 이 옷은 출발 때 벗어던지면 '아름다운 재단'에서 수거해서 재활용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7시 20분에 교보 후문 버거킹 앞에서 클럽 회원들을 만나서 기념 촬영을 하기로 했었는데 조금 늦어서 25분 경 도착했는데 회장님과 박오헌 선배님이 응원을 나오셨고 선수로는 박임수, 이재호, 이병일, 차현순, 송명식, 최벽호, 박라미, 박영준, 주동은 회원들이 모여서 간단하게 사진만 찍고 서로의 출발 존으로 갔다.

8시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했고 이어서 A그룹과 B그룹, C그룹이 대략 5분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출발했다. 이윽고 우리가 출발선에 다다랐을 때 점퍼를 벗어서 길 옆에 두었고 대신 앞선 그룹이 출발하면서 벗어 던진 대형 비닐을 옷처럼 입었다. 출발 후 몸이 더워지면 그때서 벗어던질 생각이었다.

이윽고 우리 그룹이 출발을 했다. 대략 8시 27분 경이었다. 영준이와는 출발 후 바로 헤어졌다. 나는 3시간 20분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영준이는 4시간 이내 기록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보조를 맞출 수가 없었다. 내가 목표하고 있는 3시간 20분의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1km를 4분 44초라는 기록을 끝까지 유지해야만 했으며 주로는 5km 단위로 거리 표시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배번에 5km 단위로 통과해야만 하는 시간을 적어두었다. 그러나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설사였다. 대회를 며칠 앞두고 시작된 설사 증세가 무척 심각했고 지사제를 용법과 용량을 무시하고 과다 복용해서 억지로 멈추기는 했지만 날이 너무 추워 배가 차가워지면 도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처음 5km 지점을 통과할 때 목표보다 40여 초가 초과되었다. 통과해야 하는 시간은 23분 42초 정도였으나 24분 16초 정도가 소모되었다. 아마도 출발 당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여겨졌다. 때마침 소변을 보고 싶은 느낌이 있었지만 주유소가 나타날 때마다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대로 통과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날이 너무 추워 땀 배출이 안 되어서 화장실을 7번이나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코스는 을지로를 왕복한 후에 시청 직전에서 청계천으로 접어들었다. 작년과 달라진 코스가 바로 청계천이었다. 청계천 왕복이 추가되면서 강남 코스가 거의 없어진 것이다. 청계천으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 유도 차량이 맞은편에서 오는 것이 보였고 엘리트 선수로 보이는 여자 선수 몇 명의 무리와 그 뒤에 프로급 마스터스 선수 몇 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청계천 코스가 의외로 길다는 이야기였다.

5km 지점 목표 통과 시간이 약 40여 초 초과되었기 때문에 속도를 조금 높였던 덕에 10km 지점은 47분 30여 초에 통과할 수 있었다. 이 기록은 목표 시간에서 약 10초 정도가 초과된 시간이기는 했지만 5km 지점을 통과할 때 초과된 40여 초를 많이 만회한 결과였기에 만족스러웠다. 때마침 화장실은 아니었지만 소변을 해결하기에 적당한(?) 곳이 보여서 청계천 상가 주차장 비슷한 곳에서 해결을 했고 몸도 훨씬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청계천 코스는 생각보다 무척 길었다. 청계천을 왕복한 후에는 다시 종로로 접어들었고 이제 계속 직진해서 장안평과 어린이 대공원과 서울의 숲을 지나 잠실대교를 건너게 되어 있었고 이후 15km 지점과 20km 지점을 통과한 시간들도 3시간 20분을 목표로한 페이스에 맞게 통과할 수 있었다. 만약 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면 30km 지점을 통과한 후 좀더 페이스를 높여서 기록을 더 당겨볼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날이 너무 추웠다. 출발할 때 걸쳤던 비닐을 벗어던질 수가 없을 정도였다. 더욱이 바람도 무척 강했다. 만약 비닐을 벗어던진다면 바람에 배가 노출되어 배탈이 날 것 같아 걱정도 되었고 비닐을 입고 있어도 덥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기온이 너무 낮았다. 결국 그 비닐은 22km 지점에서 벗어던졌다. 그러나 더워서는 아니었다. 벗으면 몸이 좀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 하나였고 몸도 추위에 적응이 되어 이제 배탈도 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골인할 때까지 비닐을 입고 있어도 문제는 없었을 정도로 날이 추웠고 실제로 맞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비닐을 벗을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잘 달려주고 있었지만 대회를 앞두고 마무리 훈련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언제 체력이 떨어질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30km 지점을 앞두고 성동교 못미처를 달리고 있을 때 옷을 만져보니 딱딱하게 얼어있었다. 마침 해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젖은 옷이 마르지 않고 얼었던 것이다. 더욱이 맞바람이 너무 심해서 고통스러웠다. 앞서 달리는 선수들을 이용해 바람을 피해볼까도 했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출발부터 나는 거의 모든 선수들을 추월하며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뒤에서 달리기는 더욱 힘들었다. 내가 출발한 그룹이 4시간 이후의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었기에 훈련을 통해서 기록을 당긴 내가 그들보다 빨랐던 것이다.

그래도 30km 지점 역시 3시간 20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을 그대로 유지했고 이제 코스는 서울의 숲을 옆에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좌회전을 해서 해를 마주보고 달리기 시작하자 얼었던 옷이 어느새 녹아있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체력이 남아 있다면 더욱 스퍼트를 해야 했지만 몸 상태가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몸이 조금씩 무거워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34km 지점을 통과하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1분 이상이 초과되어 있었다. 속도감을 이미 상실한 상태에서 몸이 정말 무거워졌던 것이다. 스퍼트는 커녕 이 속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된 것이다. 결국 그 순간 '게임은 끝났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35km 지점인 잠실대교 북단에 도착했을 때는 목표 시간에서 2분 가량이 초과하고 말았다. 다행히 잠실대교에서는 등에서 바람이 불어주어 한강을 넘어갈 때 부담은 적었지만 3시간 20분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고 오히려 얼마나 기록이 늘어질까를 걱정하게 되었다.

잠실대교를 넘어서면서 나이 많은 선수를 리드하며 뛰는 젊은 선수가 있었는데 이들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이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어쩌면 남은 7km 동안 초과된 2분을 만회하고 3시간 20분 안에 완주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뛰면서 페이스 메이커로 이용할만한 선수를 처음 만난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따라 뛰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석촌호수를 지날 때 나는 갑자기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35km 보급소를 잠실대교 북단에서 통과했으니 이제 보급소는 골인지점이 인접한 40km 지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에너지 젤'이라는 국산 보급식을 하나 갖고 있기는 했지만 물이 없으니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더 달리다가는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맨입에 그것을 짜먹었다. 다행히 허기는 금방 사라졌지만 입 안이 끈끈하게 달라붙어서 불편했다. 길거리에서 응원하는 사람들 중에 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얻어 마시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닦아내자 꿀이 묻은 것처럼 장갑이 끈끈해져버렸다.

할 수 없이 침을 자꾸만 만들어 삼켰고 혓바닥으로 입 주변을 여러 차례 닦에 냈다. 그 사이 페이스 메이커로 이용하려던 두 명의 선수는 멀어져 갔고 그들의 속도로 보아 내가 따라갈 상황도 못 되었다. 그래도 올해는 청계천 코스가 추가되고 강남 주변의 코스가 대폭 줄어서 잠실대교를 건넌 후의 거리가 짧아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작년에는 잠실대교를 넘은 후에도 골인 지점인 잠실운동장을 지척에 두고도 이리저리 뱅글뱅글 도는 바람에 너무 지루했는데 올해는 한강을 넘어오자마자 얼마 달리지 않아 잠실운동장으로 골인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승점을 앞두고 아시아선수촌 옆을 달릴 때의 맞바람은 정말 강했다. 그래도 많은 선수들이 마지막 스퍼트를 하면서 나를 추월해 갔고 나는 목표 기록 달성은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최대한 초과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마지막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잠실운동장 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박동식 파이팅'을 외쳐주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고맙다는 표시로 손만 들어주었다.

이윽고 폭신폭신한 트렉으로 접어들자 모든 것이 끝났구나 싶었다.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트렉을 달렸고 골인 지점을 통과한 시간은 3시간 25분 53초였다. 목표보다는 5분 정도가 초과되었지만 기존의 3시간 42분의 기록을 생각하자면 제법 큰 기록 단축이었다.

골인 후 곧바로 스트레칭을 해주고 물품 보관소로 향하는데 자원봉사 학생들이 목에 완주 메달을 걸어주었다. 사실 그 어느 대회보다 기쁜 완주 메달이었다. 늘 엉성한 준비로 대회에 나갔었는데 이번 대회만큼은 그래도 2개월 이상 준비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2.195km를 달리는 동안 나는 한번도 쉬지 않았다. 이전에는 보급소에서 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 걷고는 했었는데 이번에는 물도 뛰면서 마셨기 때문이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과 경기 내용 등이 이전에 비해 향상되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만족감이 더욱 큰 듯 싶었다.

3시간 20분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4월 16일 경향마라톤을 신청해 두었으니 그 날 다시 한번 도전할 생각이다. 이번에는 3시간 20분이 아니고 16분에 도전할 각오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후 경향마라톤 홈페이지로 가서 목표 기록을 3시간 19분에서 3시간 16분으로 수정했다. 이 대회는 출발 존의 분리를 위해서 기존의 기록이 아닌 예상 목표 기록을 접수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앞 존에서 출발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빠른 목표 기록을 남발하지 않도록 목표 기록과 실제 기록이 같을 경우 추첨을 통해 기념품을 지급한다고 했다.

이제 대회는 끝났지만 나에게는 다시 시작일 뿐이다. 3시간 20분이 아니고 3시간 16분을 위해 또 다시 도전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