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15/목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즐거웠고, 가장 힘들었고, 가장 최선을 다했던 대회였다. 물론 트라이애슬론대회가 이제 세 번째 참가이니 '가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매우 만족스런 대회였다.

일단 이번 대회에서 같은 클럽 백선배님과 선의의 대결(?)이 있었다. 입문 동기시지만 58년생이시니 우리 형님과 나이가 같으신 분이다. 수영은 수준급이시고 사이클은 내가 조금 더 잘 타고 런은 엇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는 상태다. 물론 그래봐야 도토리 키재기라고 할 수 있는 수준들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10분을 접어드리고 대결을 펼쳤다. 내가 선배님보다 10분 먼저 들어와야 동급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 대회가 올림픽 코스이기 때문에 체력 안배 없이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보자는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될 때 과연 경기 결과가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전날 오후에 대구에 도착해서 수영을 해봤더니 한 바퀴 도는데 19분이 나왔다. 1.5km 코스이기 때문에 대회 당일은 두 바퀴를 돌아야 하니 최소 40분은 잡아야 했다. 런이 최소 55분 정도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바꿈터에서 소요되는 시간 5분을 계산하면 결국 사이클을 1시간 안에 타야만 예상 목표 2시간 40분에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2시간 40분 목표는 애초부터 무책임한 목표였던 것이다. 아무튼 아무런 근거와 데이타도 없이 막연하게 2시간 40분 안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대회에 임했다.

대회 당일은 흐리면서도 무척 더웠다. 수질도 좋지 않아 내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영을 하기 전에는 늘 긴장되어 입안이 빠싹빠싹 마른다. 어떻게 이걸 두 바퀴를 도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수영은 싫었다. 그래도 제주에서 3km를 했었으니 무난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수영 도중에 다른 선수의 발에 얼굴을 맞아 수경이 삐뚤어지면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서 물을 빼내려고 했지만 입영이 미숙한 상황이라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 선수를 리드하기 위해 선수가 아니면서(수모가 대회 수모가 아니었음) 함께 수영한 사람이 있었다. 그 여자 선수와 나와의 수영 실력이 비슷했는지 두 바퀴를 도는 내내 함께 붙어서 수영을 해야 했기에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리드를 했던 남자의 수영 실력은 상당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뒤로 돈 상태에서 입영을 하면서 여자 선수에게 하나 둘 구령을 맞춰가며 리드를 했고 몇 번인가는 나의 엉덩이를 밀어 주기도 했다. 물론 나를 도와주려는 것보다는 여자 선수의 앞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지만 끝까지 입영으로, 그것도 뒤로 돌아서 나와 비슷한 속도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무튼 그가 나의 엉덩이를 밀어줄 때는 정말 앞으로 쑥 나갈 정도로 순간적인 속도가 붙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에게 부정행위를 했다며 실격이란다.-_-;;

수영을 마친 시간은 36분 정도였다. 그래도 예상했던 40분 보다는 빨리 나왔지만 여전히 물에 남은 선수는 몇 명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 없는 실력이었다. 바꿈터에서도 뭔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행동이 어색했고 출발을 하면서 보니 장갑을 끼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코스이니 장갑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선배님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이클 뿐이기에 열심히 패달을 돌렸다.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무리해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패달을 돌렸다. 물론 이것이 경기 기록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사이클이 끝나기 전에 알게 되었다. 백선배님을 만난 곳은 첫 번째 반환점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백선배님은 반환점을 돌고 맞은편에서 오시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돌리면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환점을 돌아서 무지막지하게 돌렸지만 사실 처음부터 오바를 했기 때문에 넙적다리가 상당히 무거운 상황이었다. 결국 두 번째 반환점에서 백선배님을 다시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이때 백선배님은 넘어지시고 코스에 집중하지 않았던 나는 그곳이 반환점이라는 것을 잊고 반환점을 넘어서 가파를 언덕을 올라가고 말았다. 이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또 무리를 해서 댄싱(안장에서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고 타는 방법이며 언덕을 오를 때 주로 타는 방법이지만 하체에 무리가 많아서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을 했다. 물론 제대로 댄싱을 배우지 않았기에 그저 힘으로만 댄싱을 했다. 언덕을 다 오르고서야 아차 싶었다. 반환점을 지나친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려해도 도로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사이클을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좀더 달려서 사이클을 돌려야 했다.

이때부터 백선배님을 다시 추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아무튼 오바에 오바를 했던 것이다. 결국 세 번째 반환점을 돌고 내가 지나쳤던 두 번째 반환점 즈음에 다시 도달하기 직전에서야 잠시 백선배님을 추월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고 다시 백선배님이 나를 추월하시고 50여 미터의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백선배님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바꿈터에 도달하기 전부터 이미 나의 하체는 단단하게 부하가 걸려 있었고 백선배님과의 게임은 사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백선배님 뒤를 따라 바꿈터에 도착했지만 바꿈터 안에서의 행동이 민첩해서 런은 내가 먼저 출발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다리가 무거워 10km를 달리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다. 2.5km 지점 보급소에서 스폰지에 물을 적셔 머리에 뿌려 열기를 식혔지만 그때 뿐이었다. 5km 반환점에 도착하기 전 시골 마을을 지나쳐야 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나와서 응원을 해주었다. 무척 따뜻한 응원이었다. 반환점에서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데 바로 백선배님이 오셨다. 결국 100미터도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이대로라면 오히려 추월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0분을 접은 상태에서 이기지는 못해도 기록 자체만으로도 백선배님에게 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나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나를 앞지르던 두 명의 선수가 있었고 그들의 보폭에 보조를 맞추어 2km 정도를 함께 달렸던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7.5km 지점 보급소에 도착해서 물을 마시고 잠시 쉬고 싶었지만 언제 백선배님이 오실지 모르니 그러지도 못했다. 이제 보급소도 없고 무조건 달리기만 해야했다. 골인 지점인 대구대 캠퍼스를 얼마 앞두고 마지막 주자가 반대편에서 오는 것을 보았다. 내 뒤를 따라오던 선수와 같은 클럽이었는지 마지막 주자에게 상태를 묻자 쥐가 났었다고 했다. 그 선수 뒤에는 앰블런스가 따라가고 있었다. 그 상태라면 당연 제한시간 안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이미 3시간이 넘어가고 있었고 몸 상태가 정상이라고 해도 그 지점에서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골인 지점을 코 앞에 두고 최벽호선배님이 나와 있었다.
"사진 찍는 사람 많으니까 멋지게 골인해!"
사진빨을 받기 위해 풀었던 가슴 자크도 올리고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렸다. 마라톤을 포함한 모든 대회에서 나는 골인 시기에 있어서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다른 선수와 함께 골인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뒤 선수와의 거리에도 항상 차이가 있다. 남들과 함께 골인하거나 다른 선수 바로 뒤로 골인할 경우 솔직히 골인 모양새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언맨 대회에서는 마지막 골인시 남들을 추월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록은 물론 엉망이었다. 약 3시간 10분.
Name / Swim / TR1 / Bike / TR2 / Run / Total
박동식/0:36:33/0:02:26/1:23:35/0:00:50/1:06:08/3:09:31

물론 무릎 부상을 이유로 거의 훈련을 하지 않았지만 3시간이 넘어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매우 만족스러운 대회였다. 훈련을 못하고 출전한 대회여서 절대적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도 올림픽코스에서도 체력 안배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인 후 언제 백선배님이 들어오실지 궁금했다. 의외로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었다. 마라톤 반환점까지 대략 1분 안팎의 차이가 있었는데 후반에 많이 지치신 모양이었다. 결국 5분 후에 백선배님이 들어오셨고 승리는 백선배님 차지였다. 이기는 선수에게 마라톤화를 선물하겠다는 클럽 선배님이 계셨는데 마라톤화는 백선배님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마라톤화에 눈이 어두웠던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탐나기도 했었다.^^;;

대회 자체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전에 참가했던 강릉과 성산 대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모두들 즐거워하고 있었고 들어오는 모든 선수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물세례를 퍼부었다. 경기 운영도 매우 매끄러웠고 깔끔했다. 단점이라면 수질이 좋지 않다는 것과 사이클 코스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으면 두 번째 반환점을 그대로 지나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었지만 수질은 우리 나라에서는 바다가 아니라면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고 코스는 참가 선수가 주의를 좀더 기울이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음 참가할 대회가 24일 철원에서 있는데 3시간을 넘긴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18일 이천에서 있는 대회에 또 덜컥 신청을 해버렸다. 이것 역시 올림픽 코스이기 때문에 훈련이라고 생각하며 참가하면 무리 없는 대회가 될 것이다. 결국 3주 동안 매주 마다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나저나 롤러를 사 놓고 사이클은 타지도 않으니 어찌해야 될런지 모르겠다. 내일은 필히 타봐야겠다. 어제 런 5km하고 오늘 3.5km를 했다. 역시 오른쪽 무릎 아프다. 왼쪽은 끄떡없는데 오른쪽이 고질이다. 그렇다고 마냥 쉴 수도 없고 죽을 맛이다.

훈련량
07/14
런 5km(시속 10km)

07/15
런 3.5km(시속 1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