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15/월
이미 글을 올렸던 것처럼 두 가지 꿈을 갖고 대구로 내려갔다. 수영 29분대와 전체 기록 2시간 29분대. 그 기록만 달성된다면 올해 안에 어떻게든 기록을 단축해서 나도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 대회쯤에서는 시상대에 한 번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시상대에 오를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 기록을 2시간 19-20분으로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꿈에 불과했다. 기록이 형편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만고만한 예년 기록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인 분석도 필요 없을 지경이다. 어느 한 종목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적으로 모두 부진하기 때문이다. 코스가 동일했던 같은 대회 작년과 올해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5년 수영 00:33:36, 사이클 01:16:34, 달리기 00:53:05, 종합기록 02:43:14
2006년 수영 00:34:56, 사이클 01:13:57, 달리기 00:49:00, 종합기록 02:37:51

수영은 오히려 작년보다 늦어졌지만 경기 규칙이 변경되어 작년과 동일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작년에는 물 속에서 2회전이었지만 올해는 1회전 후 계단을 올라왔다가 메트를 통과 후에 다른 계단으로 내려가서 두 번째 바퀴를 돌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특히 계단이 좁아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으니 그 사이에 소모된 시간이 최소한 1분은 넘었을 것이다.

사이클과 달리기에서 몇 분씩 기록을 단축했고 결국 그 시간이 전체 기록을 전년에 비해 단축한 시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절대 만족할 수 없는 기록이다. 수영은 지난 12월과 1월의 훈련은 고사하고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기록이 동일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으며 달리기 역시 그동안의 훈련과 기록으로 보아서 용납될 수 없는 기록이란 생각이다.

*수영
앞서 언급했던 작년보다 기록이 늦지만 일단 동일한 기록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 종목 중에 가장 자신이 없는 종목이기에 고민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서는 공격적인 레이스를 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앞에서 세네 번째에 서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거의 전력 질주를 했다. 때문인지 옆과 앞 선수들 모두 출발과 동일한 페이스와 속도감으로 진행이 되었다. 얼굴과 몸을 몇 군데 맞기는 했지만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통증도 몰랐다. 그러나 삼각형 모양의 코스 중에 첫 번째 반환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숨이 멈출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말았다. 출발부터 굉장한 오바페이스였기 때문이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이러다 아예 수영을 마치지도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숨을 고르고 페이스를 늦추면서 순식간에 주변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를 추월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반환점을 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수경을 얻어맞으면서 수경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그대로 수영을 진행했는데 물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물을 빼내지는 않고 더 이상 물만 들어오지 않도록 손으로 한 번 꾹 눌러주고 계속 수영을 했다. 첫 번째 회전이 끝나면 어차피 밖으로 나가야 하니 그때 수경을 고쳐쓰기로 했다. 시야가 흐렸고 눈도 불편했지만 그때까지만 참기로 했다.

두 번째 반환점 후 몸싸움은 적었지만 도착점의 계단이 좁아 병목현상이 생겼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수경을 고쳐 쓰고 시계를 보니 16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순간 너무 이른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모든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다시 2회전을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가능하면 로프에서 4-5미터 떨어져서 수영을 했다. 너무 붙으면 몸싸움도 심하고 오히려 앞 선수에게 걸려 진행이 불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만에 입는 슈트가 불편했지만 롤링과 글라이딩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물 속에서 물을 잡아서 밀어내는 동작은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좀더 스퍼트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다리에 쥐가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두 번째 회전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33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정말 목표를 이루기에는 돌이킬 수 없는 기록이었다.

바꿈터로 달려가면서 슈트 상의를 벗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샤워터널도 그대로 지나쳤다. 그러나 바꿈터에서 다리가 벗어지지 않았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던 옛말이 있었지만 종아리 부분에서 엉킨 슈트를 벗기에 떨리던 손은 역부족이었다. 어렵게 슈트를 벗고 사이클 복장을 갖추는데 장갑은 왜 또 그렇게 안 들어가는지. 다음 올림픽 코스에서는 절대 장갑을 착용하지 않아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이클
사이클을 끌고 바꿈터를 빠져나가면서 백승철 선배님을 만났다. 나보다야 일찍 나오셨겠지만 바꿈터에서 시간을 지체하셨을 것이다. 출발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경쾌하다거나 가볍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느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전용도로인 신천대로로 들어서면서 나를 추월하는 2-3명의 선수를 만났고 그들 뒤를 따라붙었다.

규정에 따르면 드레프팅(뒤따르기)은 분명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다른 대회라면 몰라도 대구 대회는 드레프팅을 안 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코스였기 때문에 죄책감은 애써 무시하고 드레프팅을 시작했다. 중간에 한두 명이 더 붙어서 우리 일행은 5명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드레프팅을 하고는 있었지만 앞에 세 명을 보면서 감동이 올 정도로 멋졌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선 선수가 지치면 다음 선수가 치고 나가서 앞에서 리드를 했고 또 그가 지쳐 보이면 다른 선수가 앞으로 치고 나가서 리드를 했다. 그들이 같은 클럽은 분명 아닌 듯 싶었는데 서로 뒤에서 다른 선수의 덕만 보려는 것이 아니고 돌아가면서 리드를 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단지, 나와 내 앞에 있던 나이 드신 분(다른 대회에서 얼굴은 보았던 분)만이 한 번도 리드를 하지 않고 뒤에서 덕만 보고 있었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덕만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앞으로 치고 나가고 싶어도 정말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레이스를 보면서 내가 리드할 실력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과 거의 3분의 2을 같이 탔다. 결국 40km 구간 중에 반 이상을 남의 힘으로 사이클을 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약 30km 지점의 마지막 반환점을 돌면서 그들을 놓쳤다. 턴을 하면서 속도가 떨어졌는데 그들은 지치지 않는 속도로 곧바로 속도를 높여 멀어져 갔지만 나는 턴 이후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순간적인 가속력이 약했던 것이다.

이후 그들은 점점 멀어졌고 내 레이스는 시속 26-27km까지 떨어질 정도로 힘든 레이스가 계속되었다. 맞바람도 고스란히 맞아야 했고 다리는 너무 무거웠다. 남은 10km 구간을 혼자서 타기에 나는 너무 뒤떨어지는 기량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에 초반에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나의 레이스는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더욱이 중간에 물을 마시려고 수통을 입에 물고 꼭지를 당기는 순간 수통 뚜껑이 통째로 열려서 끈끈한(파워에이드에 파워젤과 인듀런스를 희석한 것) 음료가 다리로 왕창 쏟아졌다. 수통이 오래되면서 뚜껑이 헐거워진 것이다. 하기야 수통을 닫을 때 완전히 잠기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 헛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정도로 뚜껑에 문제가 있었다. 뚜껑은 입에, 수통은 손에 들려 있었으니 음료를 마실 수도 없었다. 수통을 버려야 하는지, 아니면 입으로 뚜껑을 다시 맞춰넣어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입으로 뚜껑을 맞춰서 돌려보려다가 힘으로 밀어넣으니 그냥 들어갔다. 그리고 살짝 꼭지를 당겨서 음료를 마셨다. 그러나 두 번째 다시 음료를 마시려고 할 때 또 뚜껑이 통째로 열렸다. 결국 계획에도 없던 보급소에서 물을 받아 다리에 부어서 끈끈한 몸을 조금이라도 씻어내야 했다.

사이클 바꿈터를 약 1-2km 쯤 앞두고 수성유원지 옆 넓은 도로에 접어 들었을 때 시계를 보니 1시간 45분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만약 런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면 2시간 29분대 완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바꿈터에 도착한 시간은 1시간 48분 경이었다. 역시 좌절이었다.

*달리기
바꿈터에서 벗어지지 않는 장갑을 벗으려고 애쓰면서 다음에는 절대 장갑을 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했다. 그리고 올림픽 코스에서는 양말도 신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런을 출발하면서 역시 다리는 가볍지 않았다. 불과 500여 미터도 달리기전에 양쪽 정강이 근육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풀코스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통증이었다. 다른 곳보다 이곳에 통증이 있으면 레이스는 끝이었다. 더욱이 옆구리까지 아팠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연습 부족과 오바페이스가 원인일 것이다. 그것말고 뭐가 또 있겠는가.

그래도 걷지는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첫 번째 바퀴를 돌고(모두 5회전) 두 번째 바퀴를 돌면서 걷고 말았다. 통증을 참고 억지로 뛰는 것보다는 걸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뛰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걸어도 통증은 별로 완화되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뛰기로 했다.

달리는 동안 내가 한두 명을 추월했다면 십여 명 이상이 나를 추월했을 정도로 나의 페이스는 좋지 않았고 뛰는 내내 좌절감 밖에는 없었다. 모두들 왜 그렇게 잘 달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서야 마지막 스퍼트를 한다고 힘껏 달릴 수 있었다.

*그래도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토요일 대구로 내려가야 했는데 금요일 저녁 술자리가 있었고 제법 많이 취했다. 더욱이 부산에서 친구가 올라와서 밤 12시가 넘어(토요일 새벽) 택시를 타고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에게 달려가 2차를 했다.

새벽 3시가 넘도록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고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4시간도 못자고 대구로 내려가기 위해 함께 출발하기로 한 박대안씨 집 근처로 차를 몰고 가야 했고 피곤한 것은 둘 째 치고 여전히 술이 깨지 않아 음주운전 검문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대구에서도 밤 12시 반이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대회를 앞두고 이렇게 무리한 일정이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내 실력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기에 편하게 휴식을 취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고 해도 분명 애초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준비를 잘 했다고 해도 지금의 기록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었던 나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대회에 미치는 영향을 떠나서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절대 올바르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반성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이제 총성이 울렸다. 어제의 대회로 2006년 시즌이 정말 시작된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봐도 입상을 노리기에 내 수영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특별히 개인 강습을 받는다면 짧은 시간에 기록을 단축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다.

어제의 대회를 통해서 마음은 많이 비웠다.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단시간에 기록을 단축할 수 없는 수영이 문제라면 올림픽 코스에서 포기하더라도 중장거리에서 다시 도전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남들이 주제넘는 짓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누구나 꿈을 꿀 권리는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남은 기간이 많지 않다고 해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노력했는데도 안 되었을 때 나는 늘 마음을 잘 비운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올해 한 것이 아까워서 내년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