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17

5월 16일 철인3종경기 올림픽 코스 도전기

잠은 잘 잤다. 서울을 떠나기 전 3일 내내 하루 수면 시간이 3시간 전후였으니 대회 전날 잠이 잘 온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대회 전에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고 싶었지만 마감이 겹쳐서 밤을 샐 수밖에 없었고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회 당일 새벽 6시에 기상했을 때 의외로 피로감은 없었다. 어쩌면 쌓였던 수면부족 시간 때문에 오히려 숙면을 취했을 지도 모른다.

아침을 숙소였던 콘도 식당에서 먹고 경기에 필요한 짐들을 챙겨서 대회장으로 향했다. 딱 한번 와봤던 경포대 해수욕장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사이클을 바꿈터 거치대에 세우고 수영에서 나왔을 때 곧바로 사이클을 탈 수 있도록 사이클화, 고글, 헬맷, 타올과 사이클이 끝나고 다시 런을 시작할 때 필요한 마라톤화 등을 착용하기 쉽게 정리해 두었다.

181.
나의 출전번호였다. 팔과 다리에 매직으로 넘버링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출전을 하는구나 싶었다. 수영, 사이클, 런을 함께 할 수 있는 경기복을 안에 입고 슈트를 입었다. 숙소에서 조금 일찍 출발한 덕분에 모든 준비 과정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긴장 때문인지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갈증이 아니었기에 물을 마셔도 소용이 없었다.

출발은 9시 예정이었으나 첫 출발 신호는 3분 정도 일찍 울렸다. 3그룹으로 나뉘어 1분 간격으로 출발했고 나는 중간 그룹이었다.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전날 이미 연습을 하면서 그 강도를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물이 어느 정도로 차가웠는지 전날 물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피부가 수축되어서 손톱 밑이 갈라질 정도였다.

처음 200여 미터는 잘 간 듯 싶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의 불안감은 시작되었고 호흡이 엉키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고 라인으로 설치된 로프를 잡고 말았다. 물론 로프를 잡고 쉬는 것은 전혀 실격 사유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 나의 수영은 참담한 것이었다. 깊은 바다로 나아갈수록 물 속 색은 짙어졌고 공포심도 가중되었다. 목표 지점도 잘 보이지 않았고 파도 때문에 로프를 따라 수영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하기야 전날 연습 수영을 하면서 로프를 따라갔는데 파도 때문인지 로프가 지그재그로 찌그러져 있었다. 난 가능하면 로프와 일정한 간격을 두기 위해 로프가 멀어지면 다시 로프 쪽을 향해 수영을 했고 로프에 다다르면 다시 앞으로 나갔었다. 그러나 연습 수영을 마치고 백사장에 올라서서 보니 로프는 일직선으로 너무도 잘 설치되어 있었다. 결국 로프가 지그재그로 왔다갔다한 것이 아니고 내가 파도에 밀려 왔다갔다했던 것이다.

전날의 경험이 있었음에도 나의 수영은 더욱 처참하게 무너졌다. 첫 번째 턴 지점에는 대형 풍선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로프와 너무 붙어서 턴을 하던 나는 그 풍선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람이 꽉 찬 풍선이 아니라 허우적대봐야 풍선 밑에서 빠져 나와지지 않았고 물만 계속 마셔댔다. 아찔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럴 경우 차라리 잠수를 해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했지만 경험이 없었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빠져 나왔을까. 그때의 심정은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놀이를 왔다가 위급한 상황을 맞이한 심정이었다. 풍선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안전요원이 발견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나를 더욱 위축시켰고 어느새 중간 그룹의 녹색수모(1그룹은 흰색 수모, 2그룹은 녹색 수모, 3그룹은 붉은 수모 착용)는 내 주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수영 코스의 두 번 째 턴 지점까지 가면서 열댓 번도 넘게 로프를 잡아야 했다. 아무리 팔을 저어도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기에 불안감은 가중되었고 검은 바다 속을 보면서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결국 로프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겁에 질린 나는 허겁지겁 로프를 향해 수영을 했고 그렇게 몇 미터 가다가 파도에 밀려 로프에서 다시 멀어지면 또 허겁지겁 로프를 향해 다가갔다. 로프가 옆에 있으면 위급할 때 잡을 수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지만 로프가 조금만 멀어져도 불안감 때문에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철인3종 경기에 참여할만한 준비가 아직은 안 된 상태였던 것이다.

이제 백사장을 향해서 수영을 하고 있었지만 중간의 작은 바위섬 때문에 해변의 골인지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 섬을 넘어서 백사장을 향해 수영해야 했지만 섬까지의 거리도 아득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그룹인 붉은 수모를 착용한 선수들이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로프는 팽팽하게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이제는 잡을 만한 것도 없었던 것이다. 수영을 하면서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얼핏 시선을 뒤로했을 때 붉은 수모를 착용한 선수들도 거의 없었다. 결국 나는 가장 마지막에 남은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내가 마지막 그룹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만약 마지막 그룹으로 출발했다면 나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후미에 남게 되었을 것이고 그때 느끼는 불안감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섬까지 가면서 흰색 수모를 착용한 선수가 경기를 포기하고 안전요원의 배에 승선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물 속에서 나를 주시하는 잠수부를 보았다. 내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 미처 허우적거리며 구조를 요청하지도 못하고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될 때 나를 구해줄 사람이었지만 검은 물 속에서 검은 잠수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유쾌하지 않았다.

중간 섬을 우회해서 해변으로 가야했지만 로프를 생명처럼 생각했던 나는 중간 섬에 다다르고 말았다. 결국 로프를 가장 최단거리 수영으로 생각하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나는 안전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바위섬에 다다랐을 때 바닥이 보이기에 일어섰다. 다행히 물은 허리까지 찼다. 그러나 섬과 부딪히는 불규칙한 파도 때문에 나는 제대로 서서 쉴수 없었고 빨리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바위섬에는 이미 두세 명의 선수들이 올라가서 경기를 포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너무도 아득해 보이는 백사장을 향해서 다시 수영을 시작한 것이다.

바위섬을 지나면서부터는 로프가 없었다. 이제 백사장을 향해서 전진해야만 했던 것이다. 수영장과 달리 호흡을 하면서 전방을 주시해야 했지만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나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수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머리를 들어보았지만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자세가 엉망이었고 파도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바닥이 검어서 내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지 아니면 허우적거리고만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 또 다른 불안요인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바닥에 모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깊이를 가늠하기도 힘들었기에 수영만 계속했다. 얼핏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백사장이 코앞이었다. 일어서니 바닥이 땅에 닿았다. 그때의 심정은 '수영을 마쳤다'가 아니라 '살았다'였다. 나중에 다른 선수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모두 수영이 생각보다 쉬웠다는데 나만 공포심에 떨었던 것이다.

나는 서둘러서 사이클 바꿈터로 갈 생각도 없었다. 기진맥진이었고 심리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바꿈터로 뛰기 시작했다. 결국 수영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느낀 공포심과 불안감, 긴장감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수없이 잡았던 로프와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로 마셔댔던 바닷물도.

사이클 바꿈터에서의 행동은 비교적 원활했다. 슈트를 벗고 헬멧을 쓰고, 사이클화를 신고, 고글도 착용하고. 하기야 긴장한 선수들은 수모를 벗지도 않고 헬맷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고, 심지어는 허리에 부착해야 하는 배번을(수영에서는 부착 안 하고 사이클 딸 때부터 부착함) 착용하지 않고 출발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황당한 선수도 있다고 들었다. 출발 전 카보샷이라는 에너지 보충재를 짜먹고 물을 마셨다.

올림픽 코스는 수영이 1.5키로, 사이클이 40키로, 마라톤이 10키로다. 가장 짧은 철인3종경기 코스다. 결국 단거리 육상경기처럼 체력 안배 없이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경기라고 볼수 있는 것이다.

사이클 구입 후 지금까지의 누적 주행 거리는 400키로를 넘지 않았다. 부족한 연습량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수영과 달리 사이클은 내 예상을 뛰어넘고 잘 달렸다. 40키로의 주행시간을 1시간 30분까지 잡았었는데 정확한 공식기록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빠르게 들어왔다. 사이클을 타면서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

무리를 해서 설령 몸에 부상이 온다고 해도 오늘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일주일 후에 또 다른 철인3종경기를 신청해 놓았기에 그때도 대비를 해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내일은 없으므로.

초반에는 여러 선수들을 추월했지만 30키로 지점이 넘으면서 추월을 하거나 당하는 일은 거의 없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게 되었다. 언덕을 오를 때의 일이었다. 내가 막 누군가를 추월하려할 때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어를 어떻게 바꿉니까?"
황당한 질문이었다. 기어를 어떻게 변속하는지도 모르고 대회에 참석한 선수였다. 그는 뒷바퀴 기어가 오른쪽 레바인지 왼쪽 레바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옆에 달리면서 보통의 사이클은 오른쪽 레바가 뒷바퀴 기어라고 설명해주었다.
"어느 쪽으로 돌려야 기어가 바뀌나요? 언덕 올라가기 힘들어 죽겠습니다."
기어를 가볍게 바꿀 때 왼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설명을 하고서 그의 사이클을 살펴보니 그의 사이클은 기어 레바가 핸들에 설치되어 있지 않고 프레임에 설치된 구형이었다. 그런 기어 변속장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용 방법은 나도 알 수 없었다. 결국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그를 추월해야했다.

사이클 코스는 유턴지점이 많아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조건이기에 불만은 없었다. 중간에 펑크가 나서 고생하는 선수를 보면서 나에게 펑크라는 악제가 생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0키로를 달리는 사이 한 개의 에너지 보충재를 더 먹었고 사이클을 마치고 바꿈터에서 마라톤화로 갈아 신는 사이 달리기를 마친 1위 주자가 5분 후쯤 골인할 것이라는 방송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선수였다. 난 1위를 위해서 참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한 개의 보충재를 또 먹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수영에서 사이클로 변환할 때 양말을 신지 않았지만 달리기는 아무리 10키로라고 해도 양말 없이 달리다가는 물집이 잡힐지도 몰라서 양말을 신었다. 더욱이 쿠션이 약해서 무릎에 부담이 많다고 느꼈기에 쿠션이 강한 깔창을 새로 깔았기에 신발과 깔창 사이의 틈 때문에 물집 잡힐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달리기도 체력 안배 없이 최선을 다했다. 대신 풀코스에서 사용했던 워크브레이크를 이번에도 적용했다. 코스는 경포호수를 두 바퀴 도는 것이었다. 나의 시계는 버튼을 잘 못 눌러서 이미 구간 기록이나 전체 기록을 측정할 수 없는 상태였다. 대신 출발이 9시였으니 현재의 시간을 통해서 나의 기록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경포호수를 돌고 있을 때 그때서야 바꿈터를 향해 사이클을 타고 달려가는 선수 몇을 보았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교통통제가 풀렸고 그들은 길게 늘어선 차량들 사이를 위험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부부로 여겨지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남편은 분명 이미 골인하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뒤따르는 아내에게 보조를 맞추며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내는 아마도 오로지 남편만을 믿고 그곳까지 달려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레이스. 어쩌면 1등보다도 아름다운 레이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1키로 정도를 남기고 같은 클럽 입문 동기인 최벽호 선배님이 나를 추월했다. 상당한 마라톤 실력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이클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앞지르는 그의 등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경기복이 찢어지고 양쪽 날개쭉지에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등으로 아스팔트를 갈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앞에서 달리는  사이클의 뒷바퀴와 부딪히면서 사이클을 안고 도로에서 두 바퀴나 굴렀다고 했다.

하지만 파이팅을 외치며 나를 앞질러 성큼성큼 달리고 있었기에 제대로 안부를 물을 수가 없었다. 최벽호 선배님이 자꾸 멀어지기는 했지만 나도 열심히 달려서 해수욕장을 향했다. 그러나 곧바로 골인지점이 아니었다. 골인지점을 코앞에 두고 코스는 좌측으로 꺾어졌고 그곳에서 다시 바다로 향했다. 결국 200미터의 긴 백사장을 달려서 골인지점으로 들어왔고 조금은 조잡해 보이는 완주메달이 목에 걸렸다.

공식기록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지만 골인지점에 설치된 시계로는 2시간 45분이 경과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은 끝이 났다. 비록 철인3종경기에서는 가장 짧은 올림픽코스였지만 잘 해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아직도 수영에서의 충격은 완벽하게 가시지 않았다. 물론 무사히 완주를 했으니 엄살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의 공포심과 위급한 심정은 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수영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법을 터득해야할 상황이다. 그리고 수면 위로 전방을 주시하는 기술도 필히 습득해 두어야 할 것이다.

수영에서의 충격이 심각했지만 대회에 참석하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출발하면 마칠 때까지 계속 달려야 하는 마라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사이클로 전환하기 위한 바꿈터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역시 사이클을 마치고 달리기로 전화하기 위한 바꿈터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타킹처럼 몸에 달라붙는 남세스런 경기복을 입고 도시를 활보할 수 있다는 것도 유쾌했고 나 하나만을 위해 교통이 통제된다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이제 일주일 후 곧바로 참가해야 하는 제주 성산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코스도 철인3종경기에서는 두 번째로 긴 코스다. 마지막까지 퍼지지 않기 위해 체력 안배도 잘 해야 하지만 어제 수영의 두 배인 3키로가 걱정이다. 이것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는 8월에 열리는 아이언맨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예심을 치러야 한다.

늘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철인3종경기에 입문한 일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평생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5년은 이 운동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럼 나의 인생에서 적어도 5년간은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