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27

2004년 5월 23일. 기상 시간은 새벽 3시 30분이었다. 기상해서 전날 예약한 식당에서 전복죽을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4시 30분 가량. 전날 취침에 든 시간은 9시 30분 경이었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면서 손목 시계의 라이트 버튼만 눌러댔고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은 10시 30분. 결국 난 최소한 11시는 넘어서 잠이 들었을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사이 나의 머리 속은 끝임 없이 다음 날 있을 경기를 리허설하고 있었다. 수영은 어떻게 할 것이며 수영에서 나온 후 바꿈터에서는 슈트를 어떻게 벗고, 그 후 무엇부터 입고, 무엇부터 쓰고, 무엇부터 신을 것인지. 그리고 사이클을 타면서 먹을 에너지 보충식의 주기와 사이클을 마쳤을 때 다시 바꿈터에서 이루어질 나의 행동들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이제 리허설은 충분하니 편하게 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던 나의 뇌는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상상하고 있었다.

수면 시간이 부족했지만 긴장한 때문인지 피곤하지 않았다. 전날 미리 준비한 경기물품들을 비닐 봉지에 잘 분류해서 등에 짊어지고 숙소를 나간 시간은 아마 5시 40분 경. 숙소를 나가기 전에 황명배선배님이 노윤성선배님을 통해서 전해주신 두 가지의 약물^^을 물에 타서 마셨다. 가만 생각하니 우리는 도핑테스트라도 했다면 분명 약물 중독으로 판명되었을 정도로 여러 가지 약물을 남용하고 있었다. 전날 남기연선배님이 전화로 알려준 방법에 따라 포카리스웨트에 꿀을 진한 농도로 희석해서 사이클을 탈 때 마시기 위해 물통에 준비를 해두었고 그것도 모자라 그곳에 파워런이라는 가루약까지 넣었으니 말해서 뭐하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한술 더 떠서 혹시나 마지막 런에서 하체에 진통이 찾아오면 '약빨'로 뛰기 위해 노윤성선배님에게 진통제를 얻어서 경기복 비상 주머니에 비닐로 싸서 챙겨두었다.

사이클을 타고 경기장으로 갔을 때 단 한 명의 선수만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서둘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유 있게 대회장에 도착하는 것이 차분하게 대회에 임할 수 있는 방법이고 우리가 도착하고부터 다른 선수들도 속속 도착했기 때문이다.

동쪽 하늘은 일출봉 옆에 낮게 깔린 구름 위로 뒤늦게 붉은 해가 솟아나고 있었고 바다는 전날보다는 물결이 좀더 흔들리고 있었지만 강릉대회에 비하면 매우 양호했다. 팔과 다리에 출전 번호를 적을 때는 예쁘게 써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다. 숙소에서 가져온 바나나를 장충일, 백승철, 노윤성선배님들과 하나씩 나누어 먹은 후 슈트를 입고 물에 들어가 보았다. 춥다고 난리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발과 얼굴이 꽁꽁 얼었던 강릉대회에 비하면 온탕과 같은 수준이었다. 출발 라인은 3km를 맞추기 위해서 턴 지점보다 뒤로 물러나서 설치되어 있었고 작년 아이언맨 대회에 참관했을 때 한 바퀴를 돌고 백사장으로 올라와서 다시 출발했던 것과는 달리 물 속에서 곧바로 턴을 해서 두 번째 바퀴를 돌게 되어 있었다. 결국 한 바퀴를 돌고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은 여지없이 깨졌고 쉼없이 3km를 수영해야 되는 구조였다.

물과 적응을 마친 후 방파제로 올라와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며 에너지 보충식 카보샷을 하나 더 짜먹었다. 이제 약물 중독을 넘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뱃속에 채워 넣는 폭식을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때 바나나와 카보샷은 먹지 말았어야 했다.

출발을 5분 앞두고 모두 물 속으로 들어갔다. 수영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후미에 출발하기 위해 아예 바위에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출발을 알리는 징이 울렸고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입수했다. 물은 맑았고 깊지도 않았다. 강릉대회에서 너무 고생했던 나는 긴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끝임 없이 자신을 다독였다.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박자를 맞추며 스트록을 해나갔다. 하지만 수면 위에서 전방을 주시하는 동작은 여전히 미숙해서 물이 입안에 들어가거나 호흡이 엉키기 일수였다. 일단 다른 선수들과 몰려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전방 주시는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렇게 수영을 해나가면서 어느 순간에 라인으로 설치된 로프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부터는 그 로프를 따라 수영을 해나갔다.

강릉대회와는 다르게 중간 중간에 부표를 매달았을 뿐 로프는 아예 물 속에 잠겨 있었다. 따라서 로프를 잡고 쉴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번만은 절대 로프를 잡지 않겠다고 이미 굳게 다짐했던 차였다. 다행히 멀리 나가도 수심은 3미터를 넘지 않은 듯 싶었고 물이 맑아서 바닥이 보였기에 공포심도 없었다. 그리고 라인으로 설치된 로프가 물 속에서 보기에는 멀어 보여도 실제로는 2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부터는 심리적으로 상당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중간에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고 다른 선수의 손동작에 수경을 얻어맞기도 했지만 수경이 벗어지지는 않았으며 수영 실력이 부족하니 늘 내가 상대를 피하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가장 불편한 경우는 두세 명의 선수가 앞길을 막고 수영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을 우회해서 수영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며 첫 번째 바퀴를 무사히 돌았다. 최장거리 수영이라고는 수영장에서 딱 한번 2km를 해보았으니 이번 역시 수영 최장거리 기록 갱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수가 나보다 앞서고 있으며 그들과 나의 거리 차이가 얼마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수영 중에 그것을 확인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강릉대회 때의 나처럼 중간에 떠 있는 부표를 붙잡고 있는 선수를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두 번째 바퀴를 무사히 돌고 방파제로 올라와서 시계를 확인하니 1시간 20분이 지나고 있었다. 일단 이번 대회 참가 이유가 8월에 열리는 아이언맨대회에서 예심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최소한의 목표는 달성한 것이었다. 물에 남은 선수는 몇 명 없어 보였는데 바꿈터에서는 의외로 사이클이 많았다. 아마도 나보다 먼저 수영을 마친 선수들이 출발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날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수없이 리허설을 한 덕분인지 긴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이클을 위한 복장을 갖출 수 있었지만 한가지 예상과 빗나간 것은 선블럭크림이었다. 수영 전에 바르면 아무래도 씻겨나갈 것 같아서 수영이 끝나고 선블럭크림을 바르기로 했는데 바쁜 와중에 몸에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몸에 스며들 때까지 차분하게 바를 여유가 없었다. 결국 노출된 모든 곳에 제대로 바르지도 못했고 그나마 바른 곳도 허옇게 크림이 묻은 몸으로 사이클을 출발했다.

사이클은 총 140km로 일정 구간을 5회 반복해야 했다. 첫 번째 턴을 하기 전에 장충일선배님이 '박동식 파이팅'을 외치며 나를 추월하셨다. 당시에는 설마 나보다 수영이 늦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수영을 일찍 마치고 사이클을 한 바퀴 앞서고 계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영이 나보다 늦으셨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건너편에서 마주 오는 백승철선배님을 보았다. 수영을 잘 하시니 나를 앞서고 계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턴 지점에서 하나의 링을 받았다. 이 링이 다섯 개가 채워져야 사이클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반환점을 돌고 두 번 째 링을 향해 다다랐을 때 백승철선배님이 펑크난 튜브를 들고 씨름하는 것을 보았다. 솔직히 백승철선배님을 추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렸는데 막상 펑크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자 무척 미안했다. 만약 나에게 펑크를 때워봤던 경험이 있었다면, 5분 안에 펑크를 때울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면 사이클에서 내려서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 역시 단 한번도 펑크를 때워본 적이 없으니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마치 전쟁터에 함께 나간 전우를 배신하고 혼자서 적지를 탈출하는 병사라도 된 느낌이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단순한 펑크로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법 큰 사고를 당해서 상당한 찰과상을 입은 상태였으니 선배님 마음은 더욱 착잡했을 것이다. 내가 두 번째 링을 받고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도 반대편에서 여전히 듀브와 씨름하고 계셨지만 다행히도 다시 세 번째 링을 향해 달려갔을 때는 수리를 마치고 주행을 시작하신 상태였다.

사이클은 세 번째 바퀴를 돌면서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고 긴장감도 떨어졌다. 이때부터는 힘이 없어서 페달을 돌리지 못한다기보다는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체력도 함께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더욱이 누군가 나를 추월하거나 내가 누군가를 추월하더라도 그들이 몇 바퀴 째 돌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답답하기도 했고 경쟁심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네 번째 링을 손목에 채우고 반환점으로 향할 때 건너편에서 드디어 사이클을 마치고 런을 시작한 선수를 보았다. 마지막 다섯 번째 링을 향해 열심히 페달을 돌렸다. 이미 런을 시작한 선수들을 하나 둘 추월(?)하면서 참 독종들이다 싶었다. 런 주자 한 사람 추월하고 한참을 달렸는데 또 한 명의 주자가 나타났고 이놈이 1등이구나 생각하며 한참을 달리다 보면 또 다른 놈이 나타났다. 이놈이 정말 1등이구나 생각하며 다시 열심히 달렸는데 다시 런을 하고 있는 주자가 나타났을 때는 도대체 이것들이 사람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디서 그런 체력들이 나오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했다.

마지막 링을 받아들고 바꿈터를 향해서 열심히 페달을 돌렸다. 사이클을 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미친놈처럼 노래를 부르듯 '돌려라, 돌려! 돌려라, 돌려!'만을 반복했다. 그 덕분이었을지 사이클 주행은 나의 속도계로 평균시속 28km가 찍혔고 주행시간은 4시간 45분이 걸렸다. 초보인 나에게는 상당히 만족스런 결과였다.

문제는 음식들이었다. 프레임에 붙여두었던 네 개의 에너지 보충식은 두 개만 먹고 나머지는 먹지 않았고 두 통이나 준비했던 꿀을 탄 포카리스웨트도 한 통은 달리면서 쏟아버렸다. 아침부터 너무 많은 종류의 음식들을 먹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소화도 되지 않았고 물을 마시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속이 부딪겠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침에 먹었던 죽 이후에는 약간의 물만 마시고 더 이상 다른 음식은 먹지 말았어야 했으며 꿀을 탄 포카리스웨트는 한 통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꿀을 탄 포카리스웨트는 의외로 에너지 보충식과 비슷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맛과 느낌이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해서는 이번에 좋은 경험을 한 듯 싶었다.

사이클을 마치고 바꿈터로 달려가면서 한가지 걱정이 더 있었다. 전날 차 트렁크를 열었을 때 런닝화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대회에 오면서 헬멧을 안 갖고 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딱 내 얘기가 되고만 것이다. 대회 전 이틀 동안 제주 중문의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졌는데 그곳에 두고 온 것이었다. 지인은 마침 대회 당일 참관을 위해 성산으로 오기로 했기에 전화를 걸어 오는 길에 나의 런닝화를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아침에 수영을 출발하기 전에 확인 전화를 했지만 이른 시간 때문이었는지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문자를 날리고 수영을 시작했는데 만약 내가 사이클을 타는 사이에 런닝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달리는 것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바꿈터에는 런닝화가 있었고 대회를 앞두고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런을 위해서 상의는 그대로 입고 하의만 갈아입었다. 애초의 계획은 런을 출발하기 전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캔으로 나온 죽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도 캔을 준비했었다. 중장거리 코스이니 먹을 것 다 먹으면서 달리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잡다하게 먹었던 음식들이 소화가 되지 않아 여전히 불편했고 막상 남들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도 급해졌다.

결국 옷만 갈아입고 바꿈터를 막 빠져나갔는데 뭔가 허전했다. 모자를 안 쓴 것이었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다시 돌아가서 물품들을 확인했지만 모자는 없었다. 모자는 옷을 갈아입던 탈의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꿈터를 출발하면서 시계를 확인하니 1시 15분이었다. 경기를 시작한지 6시간이 넘어선 것이었다. 지난 강릉대회에서도 랩타임이 에러를 일으켰는데 이번에도 사이클을 타면서 어느 순간 모두 0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목에 리셋 버튼이 눌려진 것으로밖에는 달리 원인을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쉽게 버튼이 눌려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런에서도 4분 30초를 달리고 30초를 걷는 워크브레이크는 그대로 적용했다. 사이클보다 런은 더욱 외로운 질주였다. 수십 km의 코스에 150여 명의 선수들이 분산되어 있었기에 달리고 달려도 앞서고 있는 선수를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구부러진 코스의 모양에 따라 앞서고 있는 선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라지고 다시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교통통제로 해안도로는 지나는 차량도 거의 없었으며 가끔 만나는 어촌들도 우리의 경기와는 무관하게 한가한 그들의 일상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어쩌다 나를 추월하는 주자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수준급 선수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철저하게 혼자 치르는 경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 '외로움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은 삶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어차피 산다는 것 자체가 외로운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런을 하는 동안 그 긴 코스에는 오로지 바다와 바람과 나만이 존재했다. 문득 내가 왜 달리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왜 달리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 대답이 명쾌해질 때 나의 삶도 명쾌해질 것이고, 그 대답이 심플해질 때 나의 사고도 심플해질지 모르는 일이다. 결국 늘 복잡한 연관관계의 실타래를 안고 사는 나에게 그렇게 명쾌하고 심플한 날이 오기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삶은 또 예측불허이니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런은 사이클과 동일한 코스를 한바퀴 돌아야 했고 골인지점은 성산일출봉이었다. 사이클은 구입 후 총 주행거리가 400km를 넘지 않는 상태에서 강릉대회를 나갔었고 최장거리 주행도 강릉대회 40km가 최고였으니 누구의 말처럼 정말 코미디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강릉대회 이후 일주일 동안 한번도 사이클을 타지 못했으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대견하게도 나는 140km를 쉬지 않고 평속 28km로 잘 달렸고 후유증도 없이 런도 잘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 속으로는 이렇게 무식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나중에 후유증이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반환점에서 나는 마지막 한 개의 링을 받아들었다. 연두색 링이었다. 사이클에서 다섯 개의 링을 받았고 런에서 마지막 한 개의 링을 채운 것이다. 이렇게 여섯 개의 링을 채우기 위해 아침부터 그토록 달렸구나 싶은 생각을 하니 마지막 한 개의 링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골인지점인 성산일출봉까지 달리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면서 초반의 속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깨지고 나의 체력은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고 10분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속도가 늦더라도 끝까지 워크브레이크 주기는 지키려던 나의 의지는 거기서 무너지고 말았다. 더욱이 음식 조절에 실패한 나는 드디어 복통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입에서 끙끙 신음이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아직 달려야 할 시간이 3분이나 남았는데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다. 3분을 걷고 쉴 수 있는 30초마저 지난 후 다시 달려야 한다고 나의 시계는 알람을 울려주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루 종일 달려오면서 처음으로 뒤를 돌아본 것이다.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나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바보라고 자책하면서 고글을 쓰고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말을 듣지 않는 발로 작은 어촌에 도착했을 때였다. 길이 구부러지는 모퉁이에서 한 여인이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여인의 복장으로 보아서는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니고 코스 중간에서 대회에 참가 중인 애인이나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나를 격려해 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다시 달리자, 힘을 내자.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고 부추겼다. 그렇게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위크브레이크 주기를 완벽하게 지키기는 불가능했고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 거리는 아무리 달려도 쉽게 다가서지 않았다.

막판에 스퍼트를 내면서 나를 추월했던 몇 명의 선수가 있었지만 뒤를 돌아보아도 선수들은 보이지 않고 허허로운 바람만이 불어올 뿐이었고 앞을 보아도 멀리서 힘겹게 쩔뚝이는 선수의 뒷모습만 가물거리던 순간은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 되었고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설령 왜 달리고 있는지 명쾌하게 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고독이란 단어는 일종의 깨달음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루하고 고통스런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던 성산 입구 반환점에 도달했을 때 진행요원들이 응원을 해주었다. 이제 이곳을 지나쳐 성산일출봉까지 달려야 했고 나의 시계는 오후 4시 40분이 지나고 있었다. 경기를 시작한지 9시간 40분이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10시간 안에 골인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제부터 워크브레이크 없이 골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힘이 되었다. 속도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잘 달려주었고 골인을 앞두고 일출봉 주변의 상가 아주머니들이 가게 밖으로 나와서 응원을 해주었다. 그들의 응원은 단순한 '파이팅'이 아니었다. 아이고, 고생했어요. 다 왔어요. 조금만 더 달리면 되요. 그런 것들이었다. 덕분에 마지막 언덕도 힘든 줄 모르고 올랐고 나의 배번 330번을 부르며 서울 강서에서 온 박동식이라고 안내하는 휴대용 스피커의 방송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결승점을 통과하며 힘차게 테이프를 끊었다. 코스는 길면서도 출전 선수는 적었기에 선수들의 골인 주기는 상당히 길었고 따라서 마지막까지 골인하는 모든 선수들이 결승 테이프를 끊을 수 있도록 주최측은 배려해 주었다. 아마도 성산대회가 아니면 내 평생 결승 테이프를 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회가 기록이 좋은 초반 선수들만이 테이프를 끊을 수 있을 뿐 후미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그저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최측의 가난한 제정문제로 스피드칩은 사용되지 않았고 결승점에도 시계는 없었다. 모든 기록은 수기로 작성되었지만 경기 시작이 7시였으니 자신의 종합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공식 기록은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기록은 9시간 53분이었다. 애초에 11시간 안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1시간 정도 앞당긴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기록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으며 설령 예상보다 기록이 저조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173km를 잘 달려왔고 그 순간 매우 행복했다. 평소 철인3종을 즐기는 사람들은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긴 코스를 완주한 다음에는 그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 모두는 고통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애초의 계획도 그랬지만 마지막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는 이번 대회만 마치면 8월 말 아이언맨 대회까지는 대회고 뭐고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이 지난 지금 나는 7월에 한 개의 대회에 더 참가하자는 스스로의 유혹을 받고 있다.

나는 아직 아이언맨코스를 완주하지 않았기에 철인은 아니다. 그러나 2004년에 이루려는 4개의 목표 중에 하나였던 아이언맨코스 완주는 이제 내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머지 3개의 목표는 올해 안에 두 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 티베트를 다시 한번 다녀오는 것, 그리고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 중에 현재로서 이루기 가장 불가능한 것은 애완견이다. 애완견의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좁은 집안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집을 비울 때 혼자 남아있어야 하는 강아지에게도 고통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진 목표는 없지만 그 목표들은 내 주변에서 나를 맴돌고 있다. 나는 차근차근 그 목표들을 내 수중에 집어넣을 것이다. 그래서 2004년은 내게 좀더 특별했으면 좋겠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