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4/19/월

4월 18일 대회장이었던 수원 종합운동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 40분 쯤이었을 것 같다. 이미 경기복으로 갈아입은 출전 선수들이 여기 저기서 몸을 풀고 있었고 홍보를 위해 설치된 부스들과 각종 동호회 천막들이 들어선 곳에서는 상당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에는 좀더 일찍 대회장에 도착해서 차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몸도 풀고 출발 시간을 기다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소변부터 보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탈의실에 들어서자 맨소레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와중에 어떤 할아버지는 허리에도 꼭 맨소레담을 바르라며 달리려면 허리가 중요하다고 불특정 다수에게 외치셨다. 그 소리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도 옷을 갈아입고 다리에 맨소레담을 듬뿍 발랐다. 하지만 허리에는 바르지 않았다. 옷을 갑자기 얇은 경기복으로 갈아입어서인지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설사 초기 증세. 원래 장이 약해서 설사를 자주하는 편인데 대회 중에 설사 증세를 보일까봐 집에서 출발할 때 설사약도 챙겼었다. 설사약 2알을 삼킨 후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클럽에서 함께 출전한 백선배님과 나는 풀코스를 뛸 것이었고 참가신청도 안 하고 몰래^^ 참가하는 박성진씨는 연습량이 부족했다며 하프를 뛰겠다고 했다.

대회장에 7시 40분 쯤 도착했음에도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시간은 훌쩍 지났다. 출발 예정시간 8시 30분은 냉정하게 지켜졌다. 트렉으로 들어서서 제대로 몸을 풀지도 못했는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7... 출전 선수들은 카운트 다운을 함께 외쳤다.

4, 3, 2, 1!

이제 시작된 것이다. 운동장을 빠져나가면서 손목시계에서 랩타임 버튼을 눌렀다. 도로로 나오면서 정면에 수원 장안문이 보였고 기분은 상쾌했다. 도로 한복판을 달리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사실 3월 7일 첫 하프코스 도전 이후 약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애초의 계획은 그 사이 훈련을 야무지게 해서 풀코스에 출전해 무리없이 완주를 하고 기본적인 기록도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기본적인 기록이란 4시간 30분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몇몇 대회에서 참가자격 제한을 둘 때 4시간 30분 이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출전가격이 주어지기고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월 7일 이후 대회 후유증(?)으로 약 5일 정도는 쉬었었고 그 이후 15km 거리를 욕심이 앞서서 속도를 높여 달렸다가 바로 부상 초기 증세가 나타났었다. 결국 그 때문에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 연습량은 모두 합해도 50km 남짓이었다. 시간은 있어도 통증이 악화될까봐 연습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참으로 답답한 것이었다. 아무튼 대회 전까지 그냥 쭈욱 쉬면서 통증이나 치료시키고 대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본실력으로 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회 전날 걱정이 태산이었고 불안감과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고수부지로 가서 딱 3km만 감을 익힌다는 기분으로 달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새로 산 마라톤화도 아직 뛰어보지 않았기에 약간의 적응도 필요했었다. 의외로 몸이 가벼웠다. 하지만 신발이 문제였다. 뛰기 시작하면서 신발이 너무 작아 발가락이 아플 정도였다. 살 때 265는 조금 작고 270은 조금 크다고 느꼈는데 신으면 늘어난다는 점원의 말에 혹해서 샀더니만 너무 작았던 것이다. 몸이 가벼워서 3km를 뛴 것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자신감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대회를 앞두고 자신감은 무척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은 신발이 문제였다. 결국 3km를 뛰고 곧바로 구로동 할인매장 단지로 달려갔다. 몇 가지 브랜드의 몇 가지 신발을 신어보고 이전 신발과 같은 프로스펙스지만 다른 종류의 신발을 골랐다. 결국 난 한번도 신어보지 않은 새로 산 신발을 신고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엽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경기복도 신발 사러 갔다가 충동구매했던 새 옷이었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심지어 모자까지 새로 산 것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것을 사서 처음 신고, 처음 입고 마라톤에 출전하다니...

함께 출전한 백선배님은 초반부터 갈라졌다. 워크브레이크 주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워크브레이크는 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하는 것이 기록향상에 더욱 좋다는 이론인데 그 이론을 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_-;; 한마디로 힘들고 지쳐서 쉴 때는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다. 힘들기 전에 쉬고, 목마르기 전에 물 마시고, 배고프기 전에 먹어라. 뭐 그런 뜻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주위의 조언에 따라 나의 워크브레이크 주기는 4분 30초를 달리고 30초를 걷는 것으로 결정했다.

만약 워크브레이크 덕분에 하프의 기록인 1시간 55분이 풀코스까지 유지된다면 3시간 30분이란 계산이 나온다. 물론 중반이 넘어서면서 하프의 기록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워크브레이크를 통해서 끝까지 그 속도를 유지해 보겠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산상으로는 풀코스 완주 시간은 3시간 50분이며 걷는 시간을 최대한 60회로 잡아도 30분 정도가 소요될 것이기에 4시간 20분 안에 완주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출발 전에 소변을 봤는데도 초반부터 소변이 급했다. 주유소가 있었지만 조금 더 참자는 생각으로 지나쳤다. 결국 5km 지점에 도착하기 전 트럭이 세워진 길 옆에 숨어서 소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워크브레이크 때문에 초반 레이스는 조금 묘한 형국이 유지되었다. 4분 30초를 달리면서 추월했던 주자들이 내가 30초를 걷는 사이에 다시 나를 추월하고, 내가 다시 달리면서 그들을 추월하면 30초를 걷는 사이에 그들이 나를 다시 추월하는 것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초반부터 걷는 것이 불쌍해 보였는지 옆에 지나가던 아저씨는 힘내세요! 그러면서 화이팅을 외쳐 주었다.

교통 통제가 엉망이었고 덕분에 매연을 많이 마시며 뛸 수 있었다. 중앙차로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유턴을 기다리는 반대편 차선의 봉고의 창문이 열리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C발, 뛸라면 집에서 뛰어! 참 고마운 응원이었다. 하기야 우리 때문에 일요일 오전임에도 차로가 막히고 있으니 열도 받겠지.

약 20km 지점까지 심리적인 부담과 체력적인 부담없이 잘 달렸다. 기록도 하프의 기록을 그대로 유지했었다. 하지만 코스를 제대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나는 반환점이 풀코스의 중간 지점일 것으로 생각했었기에 이후의 레이스는 너무 지루했다. 아무리 달려도 반환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진행 요원이 저 언덕만 넘으면 반환점이라며 힘내라고 응원해 주었다.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힘을 내지는 않았다. 오바페이스 하지 않기 위해서. 그 긴 언덕을 넘어서 멀리 반환점이 보였고 내리막길이라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달려갔다. 반환점에서 물 마시며 물어보니 약 25km 지점이란다. 그래도 많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에 백선배님이 주신 가루약(힘나는 약^^)을 물에 타서 마시고 다시 달렸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기록이었다. 난 하프인 21.0975km를 대회에 나가서 한번 달려보았고 그 대회를 준비하기 전에 딱 한번 20km를 달려보았으니 이제부터 달리는 길은 나에게 있어서 모두 기록 갱신이었다. 단 1m를 달리는 것도 모두 나에게 최장거리라는 기록의 연속인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설령 여기서 쓰러진다고 해도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마음도 가벼워지고 용기도 더 생기는 듯 싶었다.

시계는 4분 30초가 되면 알람이 울리고 이후 30초가 지나면 다시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 두어서 워크브레이크는 제대로 지킬 수 있었지만 후반에 들어서면서 4분 30초는 4시간 30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30초는 3초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달려도 시계의 4분 30초는 줄어들지 않았고 힘들게 맞이한 걷는 시간은 훌쩍 지나고 말았다. 더욱이 급수대 간격이 넓어서 모든 급수대마다 물을 마셨음에도 30km 지점 직전에는 갈증에 시달려야 했고 주최측에 화가날 정도였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30km 지점을 통과해서 내리막이 이어졌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고가도로에서 커브를 틀자마자 긴 오르막이 나타났다. 정말 암담했다. 그래도 보폭을 줄이고 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양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넓은 도로를 가로질러 놓인 육교 밑 그늘에서 10여 명의 선수들이 퍼져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로에 드러누워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나의 워크브레이크가 아니었다면 나도 거기서 퍼졌을 것이다.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그 언덕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언덕의 길이는 총 1.5km 이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곧 걸을 수 있는 30초의 주기가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그들이 퍼져있는 곳을 지나쳐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언덕 정상에 설치된 급수대에서 이온음료 한통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급수대마다 마셔댔던 물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 다시 내리막이었다. 잠시 걷고 있을 때였다. 뒤따라 오던 누군가 말을 걸었다.

"몇 키로쯤 되었을까요?"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그도 힘들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 5km 단위로 거리 표시를 해주면 좋겠는데 이놈의 코스는 거리 표시도 거의 없었고 그나마 설치된 표시 위치도 애매한 홀수가 많아서 시간 계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긴 언덕을 오르기 전 급수대가 30km 지점이었으니 대략 32km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35km는 안 된 듯 하고요, 31-32km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럼 4시간 30분 안에 들어가기는 힘들겠네요."

그도 4시간 30분이 목표였던 것이다. 나의 손목 시계는 30초간 걸었으니 다시 달리라는 알람이 울렸고 잘 뛰시라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를 뒤로 하고 달려나갔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그 짧은 대화를 통해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그도 힘을 내서 아직 포기하지 말고 4시간 30분 안에 완주하기를 바랬다.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급수대. 아마 35km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배가 고픈데 바나나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물 한컵을 들고 걸으면서 마셨다.

그리고 결국 월드컵 경기장을 앞두고 37.5km 지점을 통과했다. 손목 시계를 보니 달리기 시작한 지 4시간 9분이 지나고 있었다. 남은 거리 5km. 남은 거리를 내가 무릎 부상의 원인이었던 시속 12km의 속도로 달려야만 4시간 30분 안에 완주가 가능했다. 하지만 난 이미 4시간 이상 달리고 있었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무했다. 4시간 30분 목표가 그렇게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허무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아~ 힘드네요."
"저도 처음인데 힘드네요. 4시간 30분 안에는 못 들어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쯤에서 4시간 40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풍선을 허리에 매단 페이스메이커(주자들의 목표 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도록 주최측에서 3시간40분, 4시간, 4시간20분, 4시간40분 등의 도우미를 출전시켜 그들을 따라 뛰면 자신의 목표 시간에 들어올 수 있다)가 나를 앞질렀다. 이대로라면 4시간 40분 안에 들어가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노란 풍선은 점점 멀어졌다.

다시 언덕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30초의 걷는 시간조차도 힘겨웠다. 달리자. 힘을 내자. 오로지 그 생각만이 있었다. 마지막 40km 지점 급수대에서 4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다시 만났다. 그들을 추월해야 겠다는 생각에 난 물을 한 컵 들고 바나나 두 조각을 챙겼다. 그리고 걸으며 바나나 한 조각을 먹고 물을 마셨다. 하지만 나머지 한 조각의 바나나는 먹지 못했다. 너무 지친 나머지 그것을 입안에 넣고 씹는 것 조차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길 옆에 물컵과 먹지 않은 한 조각의 바나나를 버리고 다시 달렸다.

4시간 28분이 되었을 때 주로는 우회전을 하게 되어 있었고 커브를 틀자마자 멀치감치 정면에 종합운동장 방향을 알리는 좌회전 이정표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일 뿐이었다. 그 이정표를 따라 얼마나 더 달려야 종합운동장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정표 뒷쪽에 종합운동장의 대형 조명탑이 보였다. 그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자마자 바로 종합운동장이 있었던 것이다. 남은 시간 2분 안에 골인할 수 있을까. 조명탑을 보면서 몸에 힘이 생겼다. 하지만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을 한 후 바로 옆에 종합운동장을 끼고 달리고 있었지만 그때 이미 나의 시계는 4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4시간 30분의 목표는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갔다. 종합 운동장 정문을 통과하고 운동장 트렉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여러 명의 응원단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붉은 트렉은 내가 달려왔던 아스팔트와는 다르게 너무도 푹신했다.

트렉에 막 진입했을 때 스피커에서는 풀코스 3위 입상자의 상장 수여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상은 일등만 기억한다고 했던가. 트렉을 한바퀴 돌고 골인지점을 통과하며 메트를 밟았다. 드디어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었다. 누군가 다가와서 다리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주었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열심히 달려오기는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더 이상 달릴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랬다. 결승점을 통과한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42.195km를 달려온 고통이 아니고 더 이상 달릴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리를 풀기 위해 앉아보려고 했지만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았다. 겨우 기둥을 붙잡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나름대로 스트레칭으로 다리를 풀었다. 터덜터덜 체육관으로 가서 기록측정을 위해 신발에 달았던 스피드칩을 반납하니 완주 메달과 우유와 빵이 든 비닐 봉지를 건네주었다. 혹시나 싶어 메달을 꺼내서 풀코스 완주 메달인지 확인해 보았다. 메달 뒷면에는 42,195km라고 분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시 가방을 맡겼던 보관소인 실내체육관으로 갔다. 실내체육관은 출발 전 북적북적대며 옷을 갈아입을 때와는 달리 몇몇 사람들이 지친 모습으로 체육관 구석 바닥에 앉아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5km, 10km, 하프는 이미 도착해서 모두 집으로 돌아간 상황이었고 풀코스 역시 기록이 좋았던 사람들은 짐을 찾아 모두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짐들. 그 곳에 내 짐도 하나 있는 것이다. 진행요원에게 번호를 보여주고 짐을 찾았다. 짐 속에서 휴대폰을 꺼냈을 때 휴대폰에는 문자가 하나 날아와 있었다.

4/18 오후 1:05
경기마라톤대회 박동식님(풀716)의 기록은 04:33:26.34입니다.

그 사이 내 기록이 휴대폰에 입력된 것이었다. 참 빠른 세상이다 싶었다. 4시간 33분 26초. 나의 첫 도전은 3분이 부족한 채로 끝이났다. 지금으로서는 언제 다시 풀코스에 도전할 지 알 수 없지만 이루지 못한 4시간 30분 목표는 잠시 뒤로 유보되었을 뿐 아직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달리는 내내 나의 마음은 행복했다.
힘들고 지쳐도 행복했다.
지금 나는 계단이 가장 무섭고 세탁기를 붙잡지 않고는 변기에 앉을 수도 없다.
3분이 부족한 채로 나의 첫 도전은 끝이 났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었고 행복했으며 그래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