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환경을 지킨다 -그린 디자이너 윤호섭 교수

그의 연구실을 찾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굳이 호수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복도에 잔뜩 쌓여있는 물건들을 통해서 그곳이 ‘버리기를 싫어하는’ 윤호섭 교수의 연구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실 내부도 만만치 않았다. 각종 전시자료들과 인쇄물은 물론이고, 마치 분리 배출을 위해 담아두기라도 한 것 같은 빈 용기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인사를 나눈 후 편한 곳에 앉으라는 그의 안내를 받았지만 앉을 곳이라고는 플라스틱 드럼통밖에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라는 말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단어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나머지’ 혹은 ‘아직 사용되지 않은 물건’이라는 뜻의 새로운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다 쓸모가 있거든요.”

사실 그의 연구실은 대부분 재활용품들이거나 오래된 낡은 물품들이었다. 손님에게 내민 의자도 그랬지만 컴퓨터의 모니터를 올려놓은 받침과 방석도 두꺼운 파지들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고 필기구통도 수명이 다한 술병의 목을 자른 것이었다. 벽에 걸린 달력마저도 양면 인쇄는 물론이고 인기 없는 재고 종이를 모아서 만들었기에 6장이 모두 각기 다른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식물성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으며 일요일과 휴일은 빈칸으로 남겨둔 채 단도로 인쇄하여 달력을 받은 사람이 직접 붉은 펜으로 숫자를 써넣도록 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기계 작동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재단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명함은 오렌지 껍질로 만든 재생지였다.

그린 디자인이란?
그가 환경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설악산에서 열렸던 제17회 세계잼보리대회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공식포스터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로서 참여한 그곳에서 그는, 환경과 자원봉사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인 대학생 미야시타 마사요시군을 만났다. 학생은 그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현장에서 답해주지 못한 질문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환경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환경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환경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야 하고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 법하는 사람들, 교육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얼핏 그가 투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깃발을 높이 들고 전열의 맨 앞에 서서 독려하고 다독이는 선구자. 우리 중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소신과 대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공공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나 하나보다는 우리 모두를 걱정하는 진정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린 디자인은 일반 디자인과 어떻게 다른가요?”
“디자인의 구상과 설계 단계부터 디자인이 사용되어지고 폐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는 디자인을 그린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환경과 미학적 가치가 모두 충족되면 좋겠지만 상충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환경과 미학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디자이너의 결정 문제겠지만 저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역시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만큼 현재의 환경 문제는 위기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매우 절박한 순간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디자인 앞에 그린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된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그린이라는 단어가 없었어도 모든 디자인은 환경을 기본으로 해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애착을 갖는 작업물로 2000년 서울에서 열렸던 everyday earthday 서울전 포스터를 꼽았다. 공해를 유발하는 인쇄 공정을 피하고 주제정신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신문지 위에 먹으로 직접 그린 포스터였다. 유명 신문들이 발행 부수를 과장하기 위하여 수요도 없는 수만 부의 신문을 인쇄해서 곧바로 파기하는 비환경적인 행태를 고발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포스터였으며 현장에서 관람객에게 직접 그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포스터는 거친 듯하면서도 대범한 붓놀림이, 문명과 이기로 대변되는 일간지와 강하게 대비되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 작품이었다. 먹의 단순함은 흑백 활자 위에서 오히려 강하게 부각되고 주제의 단순성을 극대화 시켜주었다.

사실 그는 인사동에서 그림 그려주는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는 주말이면 그는 초록 물감을 들고 인사동으로 나간다. 그의 환경 메시지가 담긴 그림을 하얀 티셔츠 위에 무료로 그려주기 위해서다. 그의 붓이 스쳐 가면 고래와 황새, 펭귄 등은 사람들의 가슴과 등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녹색 나뭇잎은 더욱 푸르게 빛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환경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림을 그려주면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그의 설명은, 예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나 하나 얻으려던 단순한 욕심을 부끄럽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동화시킨다. 천연 물감으로 그린 그의 녹색 메시지가 밝게 빛나는 순간이다.

사소해 보이는 그의 이런 노력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작은 씨앗을 품게 하고 신문이나 방송에서나 듣던 환경 이야기들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그가 두꺼운 앞치마를 두르고 거리의 화가로 변신한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대학에서 그린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는 하지만 환경 예술가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천하는 지식인
환경 문제 중에서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구 온난화다. 그래서 그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에 하나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2000년 ‘에너지 독립 선언’을 했다. 기자들을 모아놓고 거창하게 진행한 행사가 아니다. 자신의 가슴으로 다짐을 한 것이 전부다.

대학 교수라면 최소한 중형차는 몰고 다닐 것이라는 짐작은 그에게 금물이다. 그에게는 자가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전거를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처음에는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전기 자전거를 애용했다. 하지만 몇 년밖에 가지 않는 배터리의 수명 때문에 이마저도 일반 자전거로 바꾸었다. 폐배터리도 환경을 해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수유리 자택에서 정릉 국민대 캠퍼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언덕이 많아서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건강과 환경을 함께 얻을 수 있으니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 좀 조언해 주세요.”
“우선 집안의 조명 기구를 에너지 효율이 높은 형광등으로 모두 교체하는 것부터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의 코드는 뽑아놓고요.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루 세 번씩 부닥쳐야 하는 문제니까요.”

그는 자신의 조언이 새로울 것도 없고, 새로울 수도 없다고 했다. 누구나 그 방법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그는 심지어 식당에서도 반찬이 많이 나오면 일부는 주방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했다. 어차피 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에너지들이 소비될 터인데 그대로 쓰레기가 된다는 것은 분명 무책임한 일이다. 하지만 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를 조금 별난 사람쯤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그는 또 하나의 조언으로 집에 있는 모든 옷들을 꺼내서 방바닥에 펼쳐놔 보기를 권했다. 의외로 너무 많은 옷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옷들 중에서 상당수가 한 번도 입어보지 않고 새로운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옷이 아무리 많아도 입고 다니는 옷은 한 벌에 불과하다. 몸을 가리거나 보호하는 용도에서 옷은 이미 멀어졌다고는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옷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사실 그의 집에는 냉장고도 없다. 걱정했지만 막상 없어지고 나니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단벌이라는 사실이다. 세탁을 해야 할 때는 조금 일찍 귀가한다. 디자이너의 가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촌스런 그의 가방도 언제 구입한 것인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귀퉁이 여기저기가 낡아서 해졌지만 튼튼한 가방은 아직도 몇 년은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한 달에 5일 정도만 차를 사용하고 있고 겨울에는 집안에서 절대 반팔과 반바지는 입지 않는다. 날아오는 우편물의 봉투는 주소를 가리고 반드시 다시 사용하며 옷에 붙은 종이 라벨까지 분리 배출했다. 음식 남기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작성한 질문지 역시도 이면지였으며 인터뷰 기념으로 그에게 선물한 책 역시도 포장 없이 벌거벗은 그대로였다. 나름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유달리 가방을 좋아해서 한 차례 정리를 했음에도 다섯 개가 넘는 가방을 갖고 있고 옷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입어보지 못하고 철이 지나는 옷들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10년은 새로운 옷을 구입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지 아닐까.  

나 하나가 무모한 삶을 산다고 당장 지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무책임한 삶을 산다면 지구는 생각보다 빠르게 병들어가고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환경적인 삶’을 사는 것은 어쩌면 수행자의 길과 매우 흡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환경을 빙자해서 디자인을 팔아먹는 위선자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솔직히 우리 모두가 그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절박한 위기의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조금만 더 버리면서 살면 어떨까. 욕심을 버리고, 편안함을 버리고, 안이함을 버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가 그리는 스마일 그림처럼 지구도 환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글과 사진/박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