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가난을 선택한 생태농업인 김안나



꽃잔치가 한창이다.

날은 화창하고 진달래, 벚꽃, 개나리가 세상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있다.

어디든 떠나지 않으면 자신에게 빚이라도 지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들이며 산이며 꽃보다 사람들이 더 울긋불긋이다.

모두들 그렇게 어디로든 떠나려는 주말, 차를 몰고 외곽순환도로를 달렸다.

꽃놀이는 아니지만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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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가난을 선택한 김안나 선생님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생태농업


이제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모양이다.

인천시 남동구의 생태주말농장은 위치 설명만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파트를 벗어나자 내비게이션마저도 넓은 농지 한가운데서 턱하니 멈춰 섰다.

두세 차례 통화를 하고서야 김안나(43) 선생님이 계시는 공공주말농장을 찾을 수 있었다.

농장 앞에는 이런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친환경 남동구 공공주말농장은 화학비료와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생태텃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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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구 공공주말농장은 남동구의 위탁을 받고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텃밭이다.

남동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추첨을 통해 무료로 분양했다.

분양 면적은 한 가구당 약 20㎡이었고 분양구좌는 200개였다.

안내판에 적힌 것처럼 이곳에서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없다.

또한 비닐 멀칭도 할 수 없다. 그녀는 생태텃밭 강사이다.



“비닐은 석유에서 나오는 제품이에요.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만큼의 화석연료도 필요하지만 사용이 끝나고 나면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죠.”



이곳에서 추구하는 것은 생태순환농사이다.

땅에서 농산물을 얻지만 땅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공존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비닐은 흙을 파괴하고 나아가서 지구를 파괴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숲의 나무는 한 번도 비료를 주지 않지만 건강하게 자란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부엽토가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토양에서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돋우는 것이다.

결국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숲이 건강한 이유는 스스로 순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땅에서 얻는 농산물을 위해 땅에 해로운 것을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계를 사용하는 경운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기계가 지나간 자리는 딱딱해져요. 그런 곳에는 미생물이 살 수가 없어요.

미생물도 사람처럼 집이 있어야 하는데 딱딱한 땅에는 집을 지을 틈이 없거든요.

그런 땅은 식물도 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또 기계가 들어가서 땅을 갈죠.

하지만 표면은 부드러워 보일지 몰라도 기계가 들어갈수록 계속 단단해지고 말아요. 악순환인 거죠.”



물론 작은 텃밭에 기계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흙과 사람, 곤충과 풀이 더불어 공존하는 삶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텃밭에 나온 가족들은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모습이다.

아이의 손에 들린 페트병이 바로 좋은 예다.

굳이 돈을 주고 물뿌리개를 살 필요 없이 생수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작은 텃밭에서는 충분히 실천이 가능한 환경운동이다.

더욱이 아이가 감당하기에도 적당한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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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두 아들을 동반한 김낙권(45)씨는 3년 전부터 주말농장을 가꿔왔다.

시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더욱 화목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심어놓은 것이 궁금해서 가족과 자주 나오게 되요.

자연스럽게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죠. 상추가 자라면 부모님까지 모시고 와서 식사를 해요.

작년처럼 배추 가격이 비쌀 때는 적지 않게 가계에도 도움이 되었고요.”


중학교 3학년 큰아들은 그렇게 말한다.


“여기는 다른 세계 같아요.

주어진 시간과 스케줄에만 맞춰서 생활하다가 밭에 나오면 마음이 여유로워져요.

뿌린 씨앗이 땅을 뚫고 싹을 틔우는 것도 신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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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권씨 가족


올해는 감자, 상추, 청경채, 치커리, 열무 씨앗을 뿌렸다.

지난주에 씨앗을 뿌렸는데 벌써 싹이 나왔다.

내 눈에는 흙밖에 보이지 않는데 씨앗을 뿌린 가족의 눈은 다른 모양이다.

어디에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표시를 해두지 않아 어떤 채소의 싹인지는 모른다.

5월이 되면 고추와 토마토도 심을 예정이다. 밭은 작아도 없는 채소가 없을 정도다.

아이들은 특히 감자를 캘 때를 좋아한단다.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감자알이 그렇게 즐겁단다.

  

가난이 더 행복하다


김안나 선생님은 텃밭에 나온 가족들에게 물은 어느 정도 뿌려야 하는지,

어떤 씨앗은 언제 뿌려야 하는지,

어떤 채소 옆에는 어떤 채소를 심는 것이 좋은지 등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초보 도시농부들에게는 모두 약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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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그녀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전이다.

집안에 일꾼이 2명이나 있었고 어머니도 농사만 짓다가 돌아가셨을 정도로 대농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시골을 떠나면서 논밭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어려서부터 농사에 치인 까닭이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 좀 식히려고 산책을 나갔다가 어느 할머니가 포기한 밭 몇 평을 얻게 되었다.

살던 아파트 바로 뒤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달랑 상추와 열무 씨앗만 뿌렸다.



이후 그녀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출근 전에 밭에 나가고 퇴근하면 또 밭에 나갔다.

약속 잘 지키던 그녀였지만 주말에 약속이 있는 날도 밭에 나가서 나올 줄을 몰랐다.

약속 시간이 되어 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밭이 좋았단다.

할 일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채소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첫 수확하던 날은 너무 행복해서 베란다와 현관문과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밥을 먹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 얻은 밭이라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늘 밑에서 자란 채소는 크기는 작어도 오히려 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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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행복을 알게 된 그녀는 3년 전 본격적으로 생태농업 강사교육을 받았다.

1년 반 전에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찾아 시흥으로 이사했다.

그녀는 가난해졌다.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 가난을 ‘전략적 가난’이라고 표현했다.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만 지어요.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선택한 거죠.

다행히 쌀은 아버님이 시골에서 보내주는데, 식용유, 밀가루, 장, 소금은 자급자족이 안 되더라고요.

가급적 식용유를 사용하지 않는 식단으로 요리를 하고 밀가루도 안 먹기로 했어요.

그리고 올해는 고추를 심어서 고추장도 자급자족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래도 소금은 안 되겠죠?”



이상한 일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녀의 삶은 궁색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때에 비하면 몸도 더 건강해졌다.



그녀가 가장 배고플 때는 3월과 4월이라고 한다.

겨울에는 5가지나 되는 김장으로 밥상이 풍성하지만 그때가 되면 쉰 김치가 조금씩 실증이 날 때다.

싱싱한 것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들녘에 나가면 또 온통 먹을거리다.



“이른 봄에는 풀 뜯어먹고 살아요.

냉이, 망초, 민들레는 물론이고 이제 막 올라오는 싹은 한삼넝쿨도 먹을 수 있거든요.”



풀 뜯어먹고 산다는 말에 우리 모두는 박장대소했다.

텃밭을 가꾸며 자신이 얼마나 아픈 삶을 살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그녀.

달빛 아래 상추를 보면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싶다는 그녀.

모처럼 ‘사람’과 대화한 나는 텃밭을 떠나며 그런 생각을 했다.

꽃보다 달빛에 빛나는 상추가 아름다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보다야 아름답겠는가.



글과 사진 박동식


2011년 05월 불교문화 <자연을 닮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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