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 비단 물결이 일렁이는, 고창 청보리밭



운이 좋았다.

시기를 놓쳤고 더욱이 평일이었다.

그리고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내비게이션도 큰 몫을 했다.

근처에 취재를 갔다가 사진이나 몇 장 찍어두자는 생각으로 핸들을 돌렸다.

물론 갈까 말까 적지 않게 고민이 있었다.

근처라고는 해도 차량으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느 여행지와 달리 여행 적기가 있는 곳이니 다시 1년을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다녀오자고 생각했다.



하필 내비게이션은 청보리밭을 코앞에 두고 엉뚱한 길을 안내했다.

멀쩡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두고 비좁은 비포장 오솔길을 안내한 것이다.

길은 길지 않았지만 나는 이내 그 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5월의 신록이 돋아난 나무는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다.

후에 애써 다시 찾았지만 짙은 녹색으로 변한 나무는 5월만큼은 아름답지 못했다.



청보리밭도 매우 평화로웠다.

축제가 끝난 뒤라 여행자들은 많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보리들의 속삭임이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다.

풀숲에서 소리를 녹음하던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바람과 하늘과 푸른 보리가 모두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연인끼리 온 여행자가 오히려 바보 같았다.

혼자 걸어봐! 이 길은 혼자 걸어야 한다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누군가 고창 청보리밭을 언제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축제는 끝났지만 아직 청보리는 남아 있는 때.



글과 사진 박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