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이르는 길, 참선도량 대구 동화사

유난히 길었던 장마다. 7월이 가기 전에 꼭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그러나 장마가 끝난 후에는 뒤늦게 호우까지 이어졌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대구. 그중에서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동화사로 향하는 날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다. 일기예보를 유심히 살피며 잠시 비가 멈춘 날을 잡았다. 출발 전날 저녁까지 고민하다가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지난해에도 다녀온 경험으로 미루어, 동화사는 그 어떤 사찰보다 대중교통이 어울리는 사찰이기 때문이다. 봉황문에서 천천히 언덕을 올라 정토의 세계로 서서히 들어서는 경험을 편리한 자가용과 맞바꿀 수는 없었다.



약사신앙의 근본도량
터미널을 출발한 고속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동화사 스님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동화사 주변이 안개로 자욱해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염려였다. 하지만 스님의 염려와는 무관하게 안개에 싸인 동화사가 더 기대되었다. 물론 오후에 도착 예정이니 그때쯤 안개는 걷히고 없을 것이다. 아쉬운 일이다.

대구에 도착해 또 한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팔공산 동화사 입구에서 내렸다. 여름 한복판이지만 날은 선선했다. 가장 먼저 여행자를 맞는 것은 깎아지른 암벽 위에 새겨진 마애불좌상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으며 보물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과 살짝 다문 입술에는 실 같은 미소가 흐른다. 화려한 광배와 아름다운 연화대좌가 신비로울 정도로 선명하다. 마치 구름 위에 평화롭게 앉아서 중생들의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마애불좌상을 지나면 봉황문이다. 아쉽게도 많이 손상된 모습이지만 이 문을 통과하면서 드디어 사바세계를 벗어나 정토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언덕이 시작된다. 하지만 나무가 울창하고 좌측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어 힘겨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비가 멈춘 지 오래지 않아 계곡의 물은 더욱 풍부했다. 제법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정적과도 같았다. 자연의 소리는 도심에서 듣는 인공적인 소음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득음을 위해 소리를 연습하던 명창들도 폭포 아래서 정진했고, 불자나 스님들도 계곡 옆을 훌륭한 참선 장소로 여기는 것을 보면 자연의 소리에는 스스로의 근본에 몰입할 수 있는 침묵을 내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토의 세계로 가까이 다가가는 소중한 경험. 만약 차를 몰고 왔다면 도량에서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마애불과 봉황문, 계곡은 훌쩍 건너뛰고 우회도로를 통해 곧바로 주차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10분쯤 언덕을 오르면 좌측으로 높은 계단을 만난다. 계단의 수는 모두 108개다.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108가지의 번뇌를 상징하는 계단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그 번뇌들도 하나둘 벗어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 정상에는 통일약사대불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30m 높이의 통일약사대불은 불과 2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동화사의 상징이 되었다. 108명의 석공들이 약 7개월 동안 작업했으며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대불이다.

통일약사대불 앞에는 불교문화 전문박물관인 동화사 성보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2개의 전시실과 영상실을 갖춘 박물관으로, 동화사는 물론이고 동화사에 소속된 말사들의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여겨 볼만한 것은 사명당유정진영(보물 제1505호), 목조약사여래좌상복장전적(보물 제1607호), 아미타회상도(보물 제1610호) 등이다. 모두 보물로 지정된 국가지정 문화재들이다.



깨우침의 도량, 금당선원
동화사 동쪽 별당인 금당선원은 일반인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다. 선원수좌들이 겨울과 여름 각각 3개월씩 동안거와 하안거에 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국 사찰에 많은 선원들이 있지만 동화사의 금당선원은 유독 많은 수좌들이 방부를 들인다. 30명 정원의 선원이기에 그만큼 선원에 들기가 쉽지 않다. 수좌들이 동화사의 금당선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동화사에 계시는 큰스님 진제대선사 때문이다. 깨우침을 얻어 도인으로 법맥을 잇고 계신 조실스님 밑에서 수행하고 싶은 마음일 게다. 길을 알아야 안내할 수 있는 것처럼 깨우침을 얻어 도인이 되어야 답을 내주실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원수좌들은 이곳에서 1년에 두 차례 참선 정진에 들어간다. 하안거는 음력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이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다. 스님들은 이 기간에는 산문 출입을 삼가고 오로지 참선 수행에만 정진한다. 매일 새벽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가부좌를 틀고 각자의 화두에 몰입한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지만 취재를 명분으로 선원 안으로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선원 실내의 출입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나마 선원 복도까지 접근이 허락된 것도 어려운 허락이었다. 하루 12시간의 참선. 하안거 끝자락에 이르고 있었지만 수좌들의 모습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하안거에 들기 전보다 더욱 평화롭고 결연해 보였다. 하안거와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은 묵언수행이 기본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말을 아낀다. 때문에 선원은 그야말로 고요한 세계다. 먼 길을 달려온 바람마저 이곳에서는 소리 죽여 몸을 낮추며, 땅을 밟는 소리조차 경망스러워 살포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이다.

한국 불교의 선맥을 잇는 참선 도량 금당선원은 귀한 문화재도 품고 있다. 선원 입구에는 보물 제601호로 지정된 ‘달성 도학동 석조부도’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는 대구시 도학동의 내학촌락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고려 말 법상종을 크게 부흥시킨 홍진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탑이다. 탑신 윗면에는 지름 49㎝, 깊이 13㎝의 큼직한 원공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부도 주인공의 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선원 안에도 극락전 좌우로 삼층석탑 2기가 세워져 있다. 이 역시 보물 제248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동화사는 참선 도량인 동시에 문화재의 보고인 셈이다.



불자들의 철야 용맹정진
어느새 동화사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화사의 밤은 잠들지 않았다. 설법전에서 40여명의 불자들이 참선에 들어갔다. 2주에 한 번씩 진행되는 참선정진법회다. 세상의 때를 벗고 맑은 마음을 얻으려는 의지는 엄숙했다. 저녁 7시에 참선 정진에 들어간 불자들은 새벽 4시가 되어야 참선을 마친다.

2시간 동안 참선을 한 후 1시간 동안, 금당선원 선원장이신 지환스님의 법문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참선이다. 영원한 참 행복은 깨달음을 통해서 열리는 것이다. 또한 괴로움은 실체가 없고 업에 따른 인연소생이므로 괴로움이 어떻게 발생하며 어떻게 하면 소멸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니 깨달음의 중요성을 알고 깨달음을 삶의 궁극적인 관문으로 삼아 삶의 방향을 전환했는가를 돌아보고, 미래의 괴로움이 발생할 원인을 만들지 않으며 괴로움이 소멸될 수 있도록 원리에 맞게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밤새 참선 정진을 마친 불자들은 대웅전의 새벽 예불까지 참석한 후에야 동화사를 떠났다. 검은 하늘에 어렴풋이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세상이 어둠에서 서서히 푸른빛을 얻어가듯 그들의 가슴에도 작은 빛을 얻은 듯 보였다. 미약하지만 꺼치지 않고 빛의 불씨를 살라 자신의 내면과 세상에 밝은 빛이 되는 것. 말은 없었지만 환한 그들의 얼굴에서 이미 그 시작이 보이는 듯했다.



마음을 닦듯 도량을 청소한다
다음날 아침, 선원수좌들은 오전 참선에 들기 전 사리빗자루를 들고 선원 밖으로 나섰다. 경내 이곳저곳으로 흩어진 수좌들은 딱히 청소할 것도 없어 보이는 길을 쓸고 또 쓸었다. 비질을 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깨끗한 곳이라고 해도 늘 비질을 하는 것이다. 낙엽 몇 개 떨어진 것이 전부인 길은 수좌들의 비질에 의해 더욱 깨끗해졌다. 아스팔트길에는 흔적이 남지 않았지만 흙길에는 빗살무늬를 닮은 자국이 남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열된 자국은 매우 정갈했다. 비질마저도 수행이 되는 것이 바로 수좌들의 노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님들의 거처 앞마당에는 작은 텃밭도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자급자족을 위한 노력이다. 텃밭에서는 오이와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고 화학적 비료를 주지 않아 크기와 모양은 제각각이었다. 스님 한 분이 이슬을 머금은 오이와 토마토 몇 개를 따서 손에 들려주었다. 염치도 없이 스님들이 가꾼 귀한 야채를 받아들었다. 그야말로 못난이 오이와 토마토였다. 그 어떤 성찬보다 배부른 먹을거리다.

스님들은 다시 참선에 들었고 나는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토의 세계에서 다시 사바의 세계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몸은 산을 내려가고 있는데 마음은 어디에 남아 있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한줄기 바람이 뺨을 스치며 그렇게 물었다. 너는 자아의 실체 없음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나를 비우는 삶을 살고 있는가?

글과 사진 박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