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두타산 삼화사


사람에게는 나이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오로지 쇠퇴의 흔적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식물은 계절에 따라 세포의 분열과 확장을 반복하며 나이테를 만든다.

차곡차곡 1년에 하나씩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겨울에 가장 진한 흔적을 남기는 나이테.

그 차가운 계절을 가장 빨리 맞이하는 강원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애틋하고 진지한 삶의 궤적을 찾아서.




<불도(佛道)의 산 두타산 자락 삼화사>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에 위치한 두타산의 고도는 해발 1,353m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웅장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섬세한 산세다.

산 이름 두타(頭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佛道)를 닦는다는 뜻이다.

심오한 의미를 지닌 두타산 자락 맞은편에 고즈넉한 사찰 하나가 자라하고 있다.

642년 자장율사가 처음 터를 다진 삼화사다.

흑련대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삼화사는 864년 범일국사에 의해 삼공암이라 불렸고

고려 태조 때에 이르러 비로소 지금의 삼화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고려 때부터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조선시대에는 국행수록대재(國行水陸大齎)를 봉행하던 천년고찰이다.

삼화사에 도착했을 때는 짧아진 해가 산 뒤로 몸을 숨긴 뒤였다.

날은 아직 어둡지 않았지만 경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산을 넘어온 바람은 초겨울의 알싸함을 품고 있었다.

저녁 공양이 끝난 후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범종각 앞으로 모였다. 범종체험 때문이다.

그새 산사에는 어둠이 깔렸고 스님께서 법고와 목어, 운판을 친 후 참가자들이 범종을 타종하기 시작했다.

불가에서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를 사물(四物)이라 부른다.

범종은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함이며, 법고는 축생들의 해탈을 염원하는 것이며,

운판과 목어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류와 물속에 사는 생명체까지도 제도하기 위함이다.

그 깊은 뜻을 염두에 둔 참가자들의 표정은 맑고 평안했다.




<유쾌하고 즐거웠던 차담>

타종과 저녁예불이 끝난 후 심검당에서 차담이 이루어졌다.

차담을 이끄신 스님은 관음암의 탄관스님이다.

깊은 향이 감도는 보이차를 내놓으신 스님은 인연의 귀함부터 설명하셨다.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템플스테이를 위해서 모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매주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을 볼 수 있지만

세상으로 돌아가면 템플스테이 경험자를 만나는 것조차 힘듭니다.

그만큼 오늘의 인연은 귀한 것입니다.”

제법 진지하게 인연의 의미를 설명하신 스님은 ‘스님을 만난 인연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는 농담으로 묵직한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이후에도 탄관스님은 유쾌한 농담으로 차담을 이끄셨다.

가벼워진 분위기 덕분인지 누군가 스님의 ‘연봉’을 물었다.

“박찬호보다는 조금 적습니다.”

일순간 웃음이 터졌다.  

“스님이 입는 장삼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무엇을 뜻할까요?

물론 가난한 절도 있고 조금 넉넉한 절도 있습니다.

스님에게는 모두 소임이 있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스님은 재물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스님의 장삼뿐만 아니라 망자의 수의에도 주머니는 없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떠나는 망자의 깨달음을 스님은 살아서 실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님께서 몇 번이나 우려낸 차가 참가자들의 빈 찻잔을 채우는 동안 밤은 점점 깊어갔다.

그사이 불교의 종파와 경전의 종류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고,

스님은 마지막으로 부처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기도를 당부했다.

“인간 삶은 참으로 짧습니다. 즐겁고 감사하기에도 부족한 날들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인데 받아들이지 못하니 덥다고 팔짝팔짝 뛰는 것이고

겨울 역시 추운 것이 당연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니 춥다고 난리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집니다. 세상에 귀한 ‘금’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황금, 소금, 지금이지요. 그중에서도 ‘지금’이 가장 귀하고 소중합니다.

오는 것 걱정하지 마시고 가는 것도 슬퍼하지 마세요.”

귀한 말씀을 남기고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 비가 올 텐데……. 일출명상은 어쩌누?”

“일기예보를 확인했는데 오락가락하네요.”

“일기예보를 뭐 하러 봐! 내 무릎이 쑤시는데.”

스님은 마지막까지 농담을 잊지 않으셨다. 스님이 떠난 후 템플스테이 참가자 유성자(56)씨는 그렇게 말했다.

“스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오늘 예쁜 딸을 만났거든요.

비록 ‘하룻딸’이지만 깊은 인연이 있어 이렇게 만난 것이겠죠.”

그가 말한 딸은 같은 방을 쓰게 된 아가씨를 뜻했다. 그렇게 즐겁고 유쾌한 차담이 끝나고 잔잔한 여운과 함께 템플스테이 첫날이 저물었다.




<붉은 여명을 바라보며 가슴에 남기는 다짐>      

이튿날, 새벽예불이 끝난 후 모두들 추암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탄관스님의 ‘무릎 예언’처럼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일출명상을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날씨였다.

삼화사에서 차량으로 약 20분 거리인 추암해변은 동해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곳이다.

맑은 물과 깨끗한 백사장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바위가 어우러진 풍경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특히 곧게 선 촛대바위 뒤로 떠오르는 일출은 동해안 최고 비경이다.

예정대로라면 나무데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야 했지만

아쉽게도 굳은 날씨 때문에 일정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은 아니더라도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여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비로운 빛은 깊게 각인되었고 모두의 가슴에는 다짐 하나씩 품을 수 있었다.

“새로운 경험과 동시에 휴식을 갖고 싶어서 신청했어요.

처음으로 절하는 법도 배웠고 이렇게 일출명상도 참여하니 가슴이 뿌듯해요.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이제야 여유를 찾게 되네요. 돌아가면 열정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성남에서 온 김미래(24)씨의 말이다.

아침공양을 마친 후에는 포행시간이다. 삼화사는 무려 4km에 달하는 무릉계곡을 끼고 있다.

학소대, 옥류동, 관음폭포,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 등을 품고 있는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거대한 협곡이다.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이곳에 머물려 <제왕운기>를 저술했다고 전하며,

약 4958m²에 달하는 무릉반석에는 조선 전기 4대 명필 중 한 분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때문에 계곡 곳곳에서 옛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템플스테이 체험자들은 쌀쌀한 아침 기운이 머물고 있는 숲길을 걸었다.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 목적인 포행은 자신의 걸음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야 한다.

걸음을 옮기며 숲의 기운을 느끼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생각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게 포행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체험자들의 발걸음은 학소대에서 멈추었다.

오래 전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학소대는 너럭바위와 웅장한 암벽, 폭포가 어우러진 명승지다.

적당한 장소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침묵이 이어지며 폭포 소리와 바람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 하더니 명상에 집중할수록 자연의 소리마저도 침묵하듯 고요해진다.

뒤늦게 빛을 발하는 해가 높은 산 뒤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고 차가운 대기는 조금씩 따뜻함을 더해갔다.

조금은 짧게 느껴지는 1박2일의 템플스테이.

하지만 숲과 계곡과 바람은 물론이고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까지 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은 머지않아 가는 해와 오는 해를 기념한다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태양은 침묵하며 떠오른다.

호들갑스럽게 아침해를 맞이하기 보다는

지긋한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간들을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럴 때 비로소 조용하지만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붉은 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글과 사진 박동식